지난해 투구 이닝 1~5위는 모두 외국인선수였다. 토종 투수 중 180이닝을 넘게 던진 이는 두산 노경은(180⅓이닝)밖에 없었다. 노경은은 최다 투구 이닝 6위에 올랐다.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팀 입장에선 많은 이닝을 책임지는 '이닝이터'의 존재가 크게 느껴진다. 장기 레이스 중에 선발진에 구멍이 날 때도 있고, 중간계투진이 지칠 때도 있다. 이럴 때마다 긴 이닝을 막아주는 선발투수는 팀 투수력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올시즌엔 외국인선수보다 토종 에이스 두 명의 이름이 돋보인다. 지난해 신인왕 경쟁을 펼친 이들이다. NC 이재학과 두산 유희관이 주인공이다.
경기수에 차이가 있지만, 이재학은 투구 이닝 1위(6경기 42⅓이닝)을 기록중이고, 유희관은 5경기를 던진 선발 중 가장 많은 35⅓이닝을 소화했다. 그럼 게임당 이닝수로 환산해보자. 2일 현재 한 경기당 7이닝을 넘게 던진 선발투수는 둘 밖에 없다. 나왔다 하면 7이닝은 소화했다는 말이다.
지난해 선발투수의 경기당 이닝 수가 7이닝은 넘긴 투수는 없다. 물론 이재학과 유희관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평균치는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토종 에이스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건 분명 한국야구에 좋은 징조다.
좋은 선발투수를 가늠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잣대인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보자. 이재학과 유희관 모두 1경기씩을 제외하고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퀄리티스타트 횟수 5회와 4회로 이재학이 1위, 유희관이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퀄리티스타트의 기준이 너무 후하다는 평가도 있기에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도 봐야 한다. 놀랍게도 이재학과 유희관 모두 퀄리티스타트와 퀄리티스타트 플러스 횟수가 똑같다.
선발투수로서 6이닝은 평범한 수치다. 이재학과 유희관에겐 7이닝을 소화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닝당 투구수도 으뜸이다. 규정이닝을 채운 28명의 투수 중 1이닝당 15개 이하의 공을 던진 이 역시 이재학과 유희관 뿐이다. 이재학이 이닝당 투구수 14.4개를 기록했고, 유희관이 14.9개로 뒤를 이었다.
모든 면에서 최고다. 지난해 돌풍이 반짝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2년차 징크스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놀랍다. 풀타임 첫 해야 상대가 잘 모르는 낯설음도 무기지만, 이듬해부터는 집중분석에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둘은 상대의 견제에도 자유롭다.
한국 프로야구엔 에이스가 필요하다. 류현진과 윤석민이 미국으로 떠났고, 김광현도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한국야구를 이끌어갈 뉴페이스들이 필요하다. 이재학과 유희관은 그들의 빈자리를 메울 선두주자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