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자회사 KT ENS 직원의 3000억원대 사기대출과 관련해 은행권 인사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기 대출 과정에서 KT ENS 직원과 공모한 NS쏘울, 중앙TNC 등의 하청업체 6곳이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특수목적법인(SPC)의 신탁 계좌로 은행에서 매출대금이 입금되는 과정이 수 백 차례 반복됐다. 이 과정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은행의 내부 절차를 정확하게 아는 은행 업무 전문가이거나, 은행 내부 조력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금융권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수백건의 사기 대출 과정에서 하나은행, KB국민은행, 농협은행 등 13개 금융회사의 대출 만기를 정확하게 지켜 은행의 내부통제 감시망을 피했다. 또 대출금 상환을 항상 타행 송금으로만 해 타행의 경우 대출 원리금 입금 계좌를 조회할 수 없다는 여신심사 시스템의 맹점을 정확하게 파고 들었다.
실제로 1624억원으로 가장 피해가 큰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 2009년 이후 월평균 3차례씩 매출채권 확인서를 조작해 제출하는 수법으로 사기대출이 진행됐다. 또 각 은행별 대출 거래는 한번에 같은 종류의 모든 거래를 승인하는 포괄승인이 아니라 매번 대출 승인 절차를 밟았다. 13개 금융회사에서 이런 복잡한 과정이 장기적으로 수백차례 반복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은행 실무를 꿰뚫고 있는 전직 또는 현직의 은행 공모자가 존재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은행권에선 13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매번 가짜 확인서를 만들고 상환 기일에 딱 맞춰 대금을 입금하는 복잡한 과정을 자금 담당도 아닌 구속된 기획영업담당 직원 김모씨가 혼자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KT ENS의 또다른 내부 공모자가 있거나, 협력업체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역시 김씨와 납품업체들의 공모만으로는 사기대출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은행과 저축은행의 전, 현직 직원의 가담 가능성을 보고 검사에 착수했다.
사기대출 과정에 참여한 6개 협력업체들 역시 스마트폰 액세서리 제조·유통 업체들의 단체인 한국스마트산업협회 회장, 임원사로 있었던 사실이 밝혀져 사실상 '한통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들 협력업체들은 SPC 설립 단계부터 함께 참여해 처음부터 사기대출를 공모했다.
이에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는 11일 오전 협력업체 6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펼쳤다. 경찰은 사무실의 컴퓨터와 회계장부를 확보했다. 또 협력업체 대표 6명 중 4명의 행방도 쫓고 있는 중이다. 구속된 김씨와 주도적으로 사기 대출에 참여한 협력업체 대표 1명은 지난 3일 홍콩으로 도주했고, 나머지 3명도 비슷한 시기에 자취를 감춰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 상황이다. 나머지 2명 중 한 명은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다른 한명은 12일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에 대해 KT ENS 측은 "경찰 조사에 협조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진 않고, 경찰이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밝힐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이번 건은 사기대출 사건이고 KT ENS도 피해자이다. 매출 100억원도 안되는 회사에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3000억원을 대출해준 은행들의 책임이 크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KT ENS 직원 김씨는 6개 협력업체들과 공모해 SPC를 만들어 위조된 매출채권을 담보로 16개 은행에서 3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물품 거래가 없는데도 서류를 위조해 부정대출을 받았으며 대출받은 금액 일부를 기존 대출금을 갚는 '돌려막기'에 사용했다. 사기대출 금액은 최소 3000억원 정도로 예상하며 16개 은행에 대한 조사가 모두 끝나야 정확한 피해 금액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