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다른 경기도 있고 계주도 있기 때문에 좌절하면 안 된다."
이한빈(26·성남시청)은 안현수(29)아픔을 함께 했다. 한국체대 시절 4학년 '방장'은 안현수, 1학년 '방졸'은 이한빈이었다. 안현수는 당시 전성기였다. 하지만 이한빈은 2학년 때 왼쪽 발목이 부러졌다. 이후 대학 시절 내내 매년 한 번씩은 발목을 다쳐 오랜 슬럼프를 겪었다.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안현수가 있는 성남시청에 입단했다. 2010~2011시즌에는 대표팀 합류 '0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운이 겹쳤다. 대표 선발전에서 실격 판정을 받는 바람에 낙마한 데 이어 성남시청 쇼트트랙팀이 해체되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소속팀이 없던 당시 둘은 함께했다. 막막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훈련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 이한빈의 스승은 안현수였다. 그러나 안현수는 떠났다. 이한빈도 은퇴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군입대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때 손을 내민 곳이 현 대표팀 사령탑인 윤재명 감독이 이끄는 서울시청이었다. 서울시청에서 다시 스케이트 끈을 졸라맨 그는 2012년 동계체전에서 남자 일반부 2관왕에 오르고 지난해 처음으로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결전을 앞두고 이한빈은 "현수 형이 잠시 귀국해 만난 자리에서 '우리 결승전을 함께 치르고 나면 경기 결과가 어찌 나오든 상관없이 뜨겁게 포옹 한 번 해요'라고 말했어요.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입니다"라고 했다.
10일(한국시각)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에서 벌어진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선에서 이한빈은 안현수와 만났다. 힘겹게, 우여곡절 끝에 함께 결선에 올랐다. 준결선에서 어드밴스 룰 덕분에 살아남았다. 3바퀴 반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선두를 달리던 신다운(21·서울시청)이 넘어졌다. 그 뒤를 달리던 이한빈이 신다운의 팔에 걸리며 함께 넘어졌다. 심판진은 2위로 달리던 이한빈이 정상적인 플레이중 신다운의 방해로 넘어진 것으로 판단, '어드밴스'룰을 적용했다. 결선행이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이한빈은 고개숙인 신다운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다"고 했다. 아쉽게 메달획득에는 실패했다. 6위에 그쳤다. 금메달은 찰스 해믈링(30·캐나다)의 차지였다. 안현수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노메달의 아쉬움, 하지만 이한빈은 상남자였다. 그는 "다운이가 여린 성격이라 정신적으로 무너질까봐 격려해 줬다. 아직 경기가 남아 있어 좌절하면 안된다"고 했다. 이어 "처음 올림픽 결승에 나섰고, 안현수 형과 맞붙는 등 좋은 경험을 했다. 나름대로 경험이 쌓였다고 좋게 생각하겠다. 경기장의 분위기와 다른 선수들이 경기하는 흐름도 파악한 만큼 다음 종목인 1000m에 집중하겠다"고 듬직하게 말했다. 1000m, 5000m계주가 남았다. 상남자 이한빈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스포츠2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