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넥센 히어로즈 4번 타자 박병호(28)의 배팅연습 사진을 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다른 선수처럼 타격용 헬멧이 아니라 수비용 모자를 쓰고 있다. 머리 보호장비 없이 타격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연이 있다. 히어로즈 선수단은 지난 달 15일 대한항공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스프링캠프오 이동했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박병호를 비롯한 일부 선수의 개인장비가 들어있는 가방 6개가 사라진 것이다. 박병호의 헬멧이 들어있던 가방도 포함돼 있었다. 국내 스포츠 팀이 서남아시아나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종종 짐을 분실하는 경우는 있지만, 미국행 국적기를 이용했는데, 장비를 분실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히어로즈 구단은 당연히 항공사에 분실한 가방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히어로즈 구단에 따르면, 해당 항공사는 착오가 있었다며, 규정에 따라 가방 1개당 300달러(약 30만원)를 보상하겠다는 입장이다.
히어로즈 구단은 선수단이 애리조나에 도착한 직후에 바로 조치를 취했다. 한국에서 급히 추가로 장비를 공수했다. 물론, 박병호에게 새 헬멧을 지급했다.
그런데 박병호는 잃어버린 헬멧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 워낙 특별한 의미가 있는 헬멧이기에 애착이 크다.
LG 트윈스에서 1,2군을 오갔던 박병호는 2011년 시즌 중반에 히어로즈로 트레이드가 된 후 야구인생이 달라졌다. 이적하자마자 바로 4번 타자로 자리잡은 박병호는 2012년, 2013년 연속으로 홈런과 타점왕을 차지했다. 2년 연속으로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히어로즈에서 야구인생의 전기를 맞은 것이다.
지난 2년 간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도약한 박병호. 그동안 함께했던 헬멧을 이번에 분실한 것이다. 히어로즈 선수가 된 후 배트와 글러브, 장갑 등 소모성 장비를 자연스럽게 교체했지만, 헬멧은 바꾸지 않고 썼다. 홈런왕 박병호의 피와 땀이 담겨 있는 헬멧이다. 주위에서 "아쉽지만 잊고 새 장비를 사용하라"고 말하지만 박병호는 선뜻 새 헬멧을 집어들지 못하고 있다.
프로야구의 코칭스태프, 선수들은 상당히 다양한 '징크스'를 갖고 있다. 가장 잘 풀렸던 순간을 기억하고, 안 좋았던 것을 피하면서 긍정 마인드를 불어넣는다. 이런 징크스와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박병호에게 잃어버린 헬멧은 최고의 순간을 함께 해 온 특별한 장비다. 박병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헬멧만큼은 꼭 찾고 싶다"고 했다.
수비용 모자를 쓰고 배팅훈련을 하더라도 자신이 때린 타구에 머리를 맞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청백전과 연습경기가 시작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까지 헬멧을 찾지 못한다면 새 헬멧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