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중인 동생과 소치에서 단 한 차례 문자로 대화를 나눴다.
무뚝뚝한 동생이 먼저 말을 걸었다. '선물 사와'라는 짧은 메시지였다. '살게 없다'고 대답하자, 본론을 꺼냈다. '메달이라도 따와.' 동생의 진심이었다.
노선영(25·강원도청)과 노진규(22·한체대)가 나눈 문자 내용이었다. 남매는 동계올림픽을 함께 꿈꿨다. 종목은 달랐다. 누나는 스피드스케이팅, 동생은 쇼트트랙 대표였다. 계주 2번 주자로 에이스 역할을 해온 노진규는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하지만 쓰러졌다. 지난해 9월 월드컵 1차 대회가 끝난 노진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왼쪽 어깨에서 뼈암의 일종인 골육종이 발견됐다. 100만명 중에 15명 정도 발생하는 흔치 않은 병이다. 처음에는 그저 종양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노진규는 진통제를 맞아가며 훈련을 했다.
그러나 시련은 계속됐다. 소치올림픽을 목전에 둔 지난달 14일 훈련 도중 넘어져 왼팔꿈치와 어깨가 부러졌다. 돌이킬 수 없었다. 소치 입성이 좌절됐다. 종양은 더욱 악화됐다. 혹시나 하면서 받은 검사 결과, 6㎝에서 13㎝까지 자라 악성으로 변해 있었다. 결국 그는 수술대에 올랐다.
동생 몫까지 해야하는 노선영이 9일(이하 한국시각) 첫 출격했다.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팅 여자 3000m에 출전했다. 하지만 기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4분19초02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출전 선수 28명 가운데 25위에 머물렀다.
실망이 컸다. 그는 "많이 아쉬웠던 경기다. 네덜란드 전지훈련에서 심한 감기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경기 도중 아웃코스 출발을 상징하는 빨간색 끈이 흘러 내려 애를 먹었다. 버릴까도 생각했는데 실격될까봐 품고 스케이트를 탔다.
노선영은 "동생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면 마음이 더 무거워질 것 같아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부모님도 동생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하라고 하더라"고 말한 후 더 아쉬워했다.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 수술이 끝난 동생을 보고 네덜란드 헤렌벤 전지훈련 길에 올랐다. 병상에 누워 자는 모습만 봤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노선영은 16일 여자 1500m에 이어 21일 팀추월에 출전한다. 전망은 밝지 않지만 팀추월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팀추월의 경우 2013년 12월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노선영은 "3000m나 1500m는 연습삼아 타는 것이다. 팀추월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첫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작전과 시간, 안배 등을 고려하며 팀추월을 준비 중이다. 메달을 들고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인 동생이 부탁한 선물을 과연 누나가 가져갈 수 있을까. 경기는 계속된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