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전력의 SK. 왜 2-3 지역방어 앞에서 약해지는 걸까.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지역방어로 흥하던 SK가 지역방어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이론적으로 쉽게 이해가 안가는 공격 부진이라 더욱 뼈아프다.
SK는 3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연장승부 끝에 85대97로 패배, 모비스에 단독 선두 자리를 내줬다. 선두 뿐 아니라 모비스와의 시즌 전적에서 4승0패로 앞서다 4승1패가 돼 모비스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데도 실패했다.
또 한 번 2-3 지역방어에 무너졌다. SK가 2-3 지역방어에 약점을 드러낸 것은 LG전을 통해서다. 지난 15일 맞대결에서 LG가 들고나온 2-3 지역방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75대88로 완패했다. 26일 맞대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73대72로 신승했지만 다시 한 번 2-3 지역방어에 고전했다.
'만수' 유재학 감독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유 감독은 이번 시즌 2-3 지역방어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런 유 감독이 경기 후 "나는 지역방어를 좋아하지 않는데, 상대가 말리니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멋쩍어했다. LG전에서 헤맨 SK의 모습을 잊지 않고 준비해놨다가, 승부가 넘어갈뻔한 3쿼터 고비처에서 사용해 똑같이 재미를 본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건 SK의 대응이다. LG와의 2차례 맞대결에서 어려움을 겪었기에 어떤 팀이고 SK를 상대로 똑같은 수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이에 대한 대처를 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모비스의 지역방어에도 무너지고 말았다.
사실 앞선에 2명, 뒷선에 3명이 서는 2-3 지역방어는 지역수비 중 가장 기초적인 수비전술이다. 정석 중의 정석. 이 말은 즉슨, 그만큼 2-3 지역방어를 깰 수 있는 공격 공식도 정형화돼있다는 뜻이다. 특히, 아마추어 시절부터 숱하게 공격으로 깨고, 수비로 막았던 프로 선수들이기에 어렵지 않게 공략할 수 있는 수비다.
특히, SK의 팀 사정을 감안하면 이 수비를 깨지 못하는게 더욱 이해가 안간다. 2-3 지역방어의 최대 약점은 양쪽 45도 외곽이다. SK는 10개 구단 중 외곽 자원이 가장 강력한 팀이다. 변기훈 김민수 박상오 김선형 주희정 애런 헤인즈 등 코트에 서는 모든 선수들이 3점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영리한 가드 주희정과 김선형도 있다. 2-3 지역방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하이포스트에서 공을 잡아 공격, 패스를 할 수 있는 포스트 자원이 필요한데 최부경이 어느정도 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수비를 깨지 못한다.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큰 불안 요소는 상대가 2-3 지역방어를 설 때 애런 헤인즈의 역할이다. 외곽 공격 지향적인 헤인즈가 다른 선수들이 공격 포지션을 잡은 가운데, 애매한 위치에서 공을 잡으면 이도저도 공격으로 연결 돼 팀 밸런스가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노출하고 있다. 빈 자리에서 슛 찬스를 잡기 위해 5명의 선수들이 정해진 위치에서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가야 하는데, 애매한 공격 포지션이 오히려 스스로를 혼란에 빠뜨리는 꼴이 됐다. 또, 속공 마무리보다는 리딩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김선형이 볼배급을 할 때 주희정에 비해 볼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최강 모비스의 수비 조직력이지만 SK전에서는 약점을 노출했다.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은 훌륭했지만 왼쪽 날개 문태영의 수비 이해도가 많이 떨어졌다. 사실 승부처이던 4쿼터 막판 문태영과 박구영 사이의 45도에서 3점슛 찬스가 많이 났다. 접전에서 변기훈이 던진 3점슛이 들어가다 림을 돌아 나온게 SK로서는 천추의 한이 되는 장면이었다. 이 슛이 들어갔다면 모비스의 지역방어 기세도 분명 꺾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이 슛 실패가 SK 슈터들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어 모비스 수비는 더욱 힘을 받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