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연이 가득한 전쟁터. 번번히 전투에서 패하며 후퇴를 거듭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위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온통 적군의 노래와 함성소리 뿐이다. 중국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사자성어 '사면초가(四面楚歌)'. 지극히 어려운 위기 상황에 빠진 모양을 뜻하는 이 한자조어가 지금 남자 프로농구 동부의 상황을 딱 대변하고 있다.
이번시즌 동부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전반기에 팀 창단 후 최다인 12연패 기록을 썼을때만 해도 그게 안좋은 모습의 정점일 것으로 예상됐다. 어쨌든 긴 연패를 벗어나게 되면, 선수단 모두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최소한 그 정도의 연패는 안당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부는 후반기에도 힘겹기만 하다. 지난 28일 원주 KGC전에서 60대64로 지면서 전반기에 이어 또 다시 12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역대 한국 프로농구에서 한 팀이 한 시즌에 12연패 이상을 두 차례나 당한 것은 동부가 사상 2번째다. 2009~2010시즌에 전자랜드가 한 시즌에 13연패에 이어 12연패를 연속으로 당한 적이 있다.
이러한 부진의 제1요인은 역시 선수들의 부상이다. 시즌 초반 팀의 간판인 김주성이 다쳤고, 이어 1순위로 뽑은 외국인 선수 허버트 힐도 부상을 당했다. 급기야 8주 진단이 나오면서 외국인 선수가 교체됐다. 그러더니 지난 17일에는 이승준마저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됐다.
김주성-힐-이승준은 이번 시즌 동부의 핵심 전력들이다. 팀을 상징하는 '트리플 포스트'를 구성해야할 선수들이 모조리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전열을 제대로 구성하기도 어려웠다. 최근에 김주성이 부상을 어느 정도나마 회복했고, 힐을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해 삼성에서 더니건을 데려와 골밑을 강화했으나 이 구성이 안정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연패 탈출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는 와중에 동부는 또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계속된 부진으로 인해 홈팬들의 화가 폭발한 것이다. 급기야 홈경기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구단과 감독을 비난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경기 시작전 국민의례 시간에 잠깐 관중석에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졌지만, 동부 측은 이런 플래카드가 나왔다는 것 자체로 크게 안타까워하고 있다. 동부의 한 관계자는 "팬들의 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런 플래카드가 결국 선수들의 사기를 더 떨어트릴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주셨으면 좋겠다"며 현재의 상황을 아쉬워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동부는 현재 윤호영의 복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윤호영은 29일자로 상무에서 제대하고 소속팀 동부에 복귀한다. 이충희 감독은 "윤호영이 돌아오면 바로 경기에 투입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렇게되면 윤호영의 복귀전은 31일 고양 오리온스전이 된다.
윤호영은 김주성과 함께 동부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다. 특히 2011~2012시즌에는 김주성-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과 함께 골밑을 완전 장악해 '트리플 포스트'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의 동부는 이들 세 명 포스트의 위력을 바탕으로 한 막강 수비로 상대의 목을 조르는 '질식수비'로 승승장구했다. 동부는 당시 시즌 최다 신기록인 44승을 기록하며 역대 최초로 시즌 승률 8할을 넘긴 팀이 됐다. 윤호영은 이때 52경기에서 33분45초를 뛰면서 평균 12득점에 5.2리바운드, 2.6어시스트, 1.4블록슛을 기록했다.
이후 상무에 입대했던 윤호영은 2년만에 팀에 복귀하게 된다. 모든 면에서 2년 전과는 달라진 팀이다. 사령탑이 우선 바뀌며 전술에 변화가 생겼다. 또 믿었던 선배 김주성도 몸상태와 기량이 2년전에 못 미친다. 벤슨도 없다. 윤호영 자신도 2년전과는 여러 부분에서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동부의 상황을 보면 윤호영이 해줘야만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약해진 골밑 수비도 맡아야 하고, 김주성과의 호흡도 되살려야 한다. 득점에서도 일정부분 책임져줄 필요가 있다. 팀의 기대감도 크다. 자칫 이런 면들이 선수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윤호영이 과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팀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