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유력 스포츠 매체 '스포츠케 노보스티(SN)'는 지난 4일 크로아티아 리그 '왼쪽 수비수' 분석 기사를 실었다. 전반기 부문별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는 기사에서 이스트라1961의 한국인 '레프트 풀백' 정 운(25)이 평점 6.5를 받으며 당당히 1위에 올랐다. 크로아티아 대표팀 수비수 조지프 피바리치(25·디나모 자그레브)가 5위, 크로아티아 20세 이하 대표팀 주전 수비수 출신의 카를로 브루치치(22)는 4위에 랭크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6위 크로아티아의 대표급 선수들을 줄줄이 따돌렸다. '무명의 K-리거' 정 운은 크로아티아리그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크로아티아발 '인생 역전'이다.
1m80-76kg의 신체조건을 갖춘 정 운은 울산 유스 출신이다. 울산 현대중고-명지대를 거쳐, 2012년 우선지명으로 울산에 입단했다. 쟁쟁한 선후배, 외국인선수들이 즐비한 울산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라운드를 밟지도 못한 채 첫 시즌이 흘러갔다. 2013년 1월, 계약해지 후 낯선 나라, 크로아티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스트라1961의 이고르 파미치 감독(44)이 그를 원했다. K-리그에서 지독한 좌절을 맛본 정 운에게 크로아티아는 기회와 도전의 땅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동유럽 선수들은 '동양에서 온 선수'를 보란듯이 거칠게 다뤘다. 이를 악물었다. 첫 눈빛에서부터 밀리지 않았다. 당차게 맞섰다. 왼쪽 윙어, 왼쪽 풀백을 겸하는 멀티플레이어, 팀의 주전으로 급성장했다.
지난시즌 12경기, 856분을 뛰었던 정 운은 올시즌 19경기 중 16경기, 1342분을 뛰었다. 1골1도움을 기록했다. 4장의 옐로카드, 1장의 레드카드가 그의 치열한 전투력을 입증한다. 리그와 팬, 미디어가 인정하는 '왼쪽의 희망'이 됐다.
축구는 꿈 많은 청춘들을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정 운이 어느날 갑자기 크로아티아 리그에 등장했듯이, '룸메이트' 산디 크리즈만이 올시즌 운명처럼 K-리그 전남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게 됐다. 크리즈만과 정 운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붙어다니던 '동갑내기 절친'이었다. 크리즈만은 올시즌 리그에서 5골 5도움을 기록했다. '매의 눈' 노상래 전남 수석코치의 눈에 띄었다. '정 운의 나라' K-리그행을 결심했다. 한국으로 떠나는 크리즈만에게 정 운은 "관중수는 여기만큼 많지 않지만, 크로아티아리그보다 수준이 높다"고 귀띔해줬다. "너라면 틀림없이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진심어린 응원을 보냈다. 크리즈만 역시 팀 동료였던 정 운을 높이 평가했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강한 수비수"라고 극찬했다. "어느 팀, 누구와의 몸싸움에서도 결코 밀리는 법이 없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크로아티아에서 정 운이 뛰는 모습을 직접 보고온 노 코치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선이 굵은 수비수다. 공을 예쁘게 찬다기보다는 터프하고 강하게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투지와 엄청난 활동량, 파이팅이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어느 팀에서든 주전으로서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선수다. 향후 여러 팀을 거친다면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