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김보경(25·카디프시티)은 수줍음이 느껴지면서도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하는 웃음을 지었다. 영국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그리고 다시 차로 30여분을 들어온 외딴 곳에서 만난 한국인이 내심 반가웠던 모양이다. 훈련과 휴식 그리고 경기 출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보경을 영국 웨일스 카디프 베일 리조트에서 만났다.
김보경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또래 친구들이 K-리그를 택할 때 그는 홀로 일본으로 넘어갔다. 프로 무대에서 외국인 선수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였다. 보이지 않는 텃세도 있었다. 일본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올림픽대표로도 맹활약했다. 유럽의 명문팀들로부터 러브콜이 날아들었다. 깊은 고민 끝에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카디프시티를 선택했다. 말이 많았다. 하지만 김보경은 소신을 믿고 따랐다. 당장의 헛된 명성보다는 경기 출전을 바라고 이적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김보경의 선택은 옳았다.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다
2012~2013시즌 챔피언십에서의 1년은 적응기였다. 잉글랜드 축구는 역시 피지컬이었다. 상대 수비수들은 다들 거구였다. 투박하기까지 했다. 이곳저곳에서 살인적인 태클이 날아들었다. 김보경은 근력을 키웠다. 하지만 웨이트로 성장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를 어쩔 수 없었다. 김보경은 "사실 근육을 키운다고 해도 유럽의 통뼈들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다.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해답은 순발력과 기술, 그리고 밸런스였다. 순발력을 길러주는 운동에 집중했다. 밸런스도 잡아나갔다. 밸런스가 잡히자 축구에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몸싸움을 해도 넘어지지 않고 계속 치고 나갔다. 챔피언십에서 카디프시티의 우승 뒤에는 김보경의 성공적인 적응이 있었다. 김보경은 "순발력을 극대화하고 밸런스를 키우니 잉글랜드 축구에 적응하게 됐다. 자신감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 외적인 생활에서도 빠르게 적응한 것이 컸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김보경이 살고 있는 베일 리조트는 카디프 시내에서도 16㎞정도 떨어져있다. 카디프시티의 훈련장이 있고, 은퇴 후 여생을 즐기는 입주민들만이 사는 조용한 곳이다. 생필품을 파는 곳도 차를 타고 나가야만 한다. 20대 초반의 젊은이에게는 쉽지 않은 생활이다. 남들 같으면 금방이라도 뛰쳐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한 성격의 김보경에게는 플러스였다. 훈련과 휴식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현재는 에이전트사 직원과 함께 생활한다. 남자 둘이 살면서 밥도 해먹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부모님이 자주 방문해 음식과 뒷바라지도 해준다. 김보경은 "생활 측면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2013~201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로의 승격은 김보경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EPL은 세계 그 어떤 리그보다도 빠른 템포를 자랑한다. 상대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도 좋다. 하지만 김보경은 겁내지 않았다. 챔피언십에서도 완벽하게 적응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했다. 김보경은 "이미 잉글랜드 무대에 적응한만큼 두려움은 없었다. 지금은 계속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김보경의 몸상태는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맨시티전에서의 '메시 빙의 폭풍드리블'이나 11월 맨유와의 경기에서의 극적인 동점골 등이 김보경의 발전을 증명하고 있다.
올레 군나 솔샤르 신임 카디프시티 감독도 김보경을 돕고 있다. 부임 초기부터 김보경을 핵심 선수로 찍었다. 최적 포지션을 놓고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와 좌우 측면 공격수로 번갈아 배치 중이다. 김보경도 솔샤르 감독을 신뢰하고 있다. 김보경은 "젠틀한 분이다. (박)지성이 형한테도 물어봤는데 같은 대답이었다. 좋은 역량을 보여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야기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으로 넘어갔다. 김보경은 홍명보호에 꾸준히 승선하고 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김보경은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월드컵 보다는 당장 앞에 있는 리그를 이야기했다. 그는 "월드컵의 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일단은 시즌에 집중할 때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없으면 월드컵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이번 시즌 팀 성적이 예상보다 나오지 않는다.(현재 카디프시티는 승점 18점으로 꼴찌에 처져있다) 하지만 지금이 고비다. 어떻게 잘 넘기냐가 과제다. 팀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꼭 잔류를 이루어내겠다"고 말했다. 카디프(영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