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타자들의 전성기는 20대 중후반이라고 한다.
매년 타격 각 부문 타이틀 홀더를 보더라도 이 나이에 걸친 선수들이 대부분 이름을 올렸다. 그보다 젊었으면 젊었지, 20대 후반을 넘겼던 타자는 거의 없었다. 홈런의 경우를 보자. 역대 홈런왕에 오른 선수들의 나이를 보면 대부분 20대 중후반이었다. 파워와 기술의 조화가 정점을 이루는 시점이 바로 20대 중후반이라는 이야기다. 넥센 박병호, SK 최 정, KIA 나지완, 삼성 최형우 등 최근 2~3년간 홈런 레이스를 이끈 선수들의 나이도 20대 후반이었다.
삼성 이승엽이 50홈런 이상을 쳤던 99년과 2003년, 그의 나이는 각각 23세, 27세였다. 앞선 홈런 타자 세대인 장종훈은 20대 중반이었던 90년대 초반 홈런왕을 독차지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30대 후반 스테로이드를 앞세웠던 배리 본즈를 제외하면 대부분 20대 중후반 선수들이 홈런 레이스를 주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나이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부활을 기대한다. 바로 이승엽이다. 지난 2012년 8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승엽은 그대로였다. 팬들의 사인 요청에 밝은 미소로 대하거나 기자들의 질문에 수줍게 답하고 10년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은 일본 진출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30대 후반이 돼서 돌아온 그는 홈런 싸움에서 한 발치 물러나 있었다. 이승엽 복귀 첫 해 류중일 감독은 "승엽이가 일본 가기 전처럼 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30홈런을 치면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복귀 첫 해 이승엽은 21홈런을 때렸다. 류 감독의 기대치를 정확히 만족시켰다. 하지만 지난 시즌 이승엽은 111경기에서 13홈런에 그쳤다.
그러나 여전히 이승엽의 역할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지금 프로야구를 주름잡고 있는 타자들은 이승엽을 '롤모델'로 삼고 중고교 시절 기량을 닦았다. 일본에 진출한 이대호 뿐만 아니라 박병호, 최 정, 나지완 모두 이승엽을 바라보며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지금 학생 선수들이 박병호를 보고 연습하듯 그 시절에는 이승엽이 그랬다는 이야기다. 올시즌에도 이승엽을 바라보는 선수들은 '우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의 블라디미르 발렌틴(30)은 60홈런을 치며 이승엽이 가지고 있던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그가 57홈런을 치던 날 이승엽은 "우리하고 일본은 리그가 다르다. 내 기록은 한국 기록이고, 발렌티엔은 일본 야구 기록이다. 무대가 다르다. 물론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그런 기록을 세웠다면 훨씬 의미가 깊을 것"이라며 담담하게 의견을 밝혔다. 2년 연속 홈런왕에 오른 박병호에 대해서도 "정말 잘 치는 타자다. 내가 보고 배울 것이 많다"고 겸손을 나타내기도 했던 이승엽이다.
이승엽이 이제 프로 20번째 시즌을 맞았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팬들은 즐겁지만, 그래도 홈런을 좀더 쳐주기를 바라고 있다. 역대 최고령 홈런 타자는 86년 34세의 해태 김봉연이었다. 당시 108경기에서 21홈런을 날렸다. 외국인 타자로는 지난 2005년 현대 서튼이 35세의 나이에 35홈런을 치며 홈런왕에 올랐다. 올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엔트리가 3명으로 늘어나면서 각 팀들이 타자 1명씩 영입했는데 대부분 거포들이다. SK 루크 스캇, 두산 호르헤 칸투는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으로 명성을 떨쳤던 선수들이다. 토종 타자들과의 홈런 경쟁이 벌써부터 흥미를 끈다. 여기에 이승엽이 가세한다면 흥미는 배가 될 것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