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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떠나는' 김현태 코치 "나는 행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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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동안 계속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저는 행운아였던거죠."

골키퍼는 최후의 보루라 불린다. 승패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골과 다름없는 상황을 막아낸다면 득점 이상의 효과를 얻는다. 반면 어이없는 실수로 골을 먹는다면 팀 사기는 저하된다. 그만큼 중요한 포지션이다. 김현태 코치(53)는 한국 골키퍼 코칭의 선구자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골키퍼 코칭에 있어 사실상 첫번째 전문가였다. 2000년대 들어 거둔 한국 축구의 찬란한 영광 뒤에 그가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 16강의 숨은 공로자다. 이운재 정성룡 등이 그의 지도 아래 한단계 높은 선수로 성장했다. 유럽에서 잔뼈가 굵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제대로 된 골키퍼 코치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1991년 선수생활을 마친 후 23년간 코치로 쉼없이 달려왔던 김 코치가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그는 올시즌을 앞두고 인천과 계약이 만료됐다. 그는 재충전의 기회라며 웃었다. 김 코치는 "23년 동안 한번도 쉬지 않았다. 항상 나를 찾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허정무 조광래 정해성 박병주 등 좋은 감독들과 함께 하면 많은 영광을 누렸다. 나는 행운아였다"며 "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잘 준비해서 더 큰 그림을 그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 코치는 다음달 6일 네덜란드로 코치 연수를 떠날 예정이다. 지인의 도움으로 PSV에인트호벤과 아약스 등에서 공부를 할 생각이다. 자유의 몸이 된 김 코치에게 많은 러브콜이 쏟아졌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쪽에서 전문 골키퍼 코치 육성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이번이 아니면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네덜란드행을 결심했다. 김 코치는 "사실 지난 남아공월드컵 후 유학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조광래 감독님이 다시 한번 대표팀서 일하자고 제안하시더라. 그 다음에 쉴려고 했더니 인천으로 오라는 허정무 감독님의 러브콜을 거절하지 못했다. 협회의 제안도 좋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더이상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가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김 코치는 은퇴를 전후해서 독일 연수를 다녀왔다. 이렇다할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김 코치에게 독일 연수는 신세계였다. 그는 "새롭게 눈을 떴다. 이런 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그때 워낙 열심히 해서 얼굴이 반쪽이 됐다. 유학 중이던 최강희 감독님이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됐냐?'고 했을 정도다"고 설명했다. 김 코치는 연수 후 제대로 된 골키퍼를 양성하자는 생각에 골키퍼 축구교실을 열기도 했다. 그의 열정 속에 골키퍼 난에 시달리던 한국축구는 걸출한 골키퍼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김 코치는 연수 후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좋은 감독님들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가르침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K-리그에서 골키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감독도 한번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골키퍼 교육을 위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그 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문 골키퍼 코치도 길러보고 싶다. 이번 연수가 그 시작이다"며 웃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