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인터뷰] 돌직구 같은 배우, 유연석… "칠봉이의 진심으로 충분해"

by

이 남자, 이젠 여성들의 '공공재'다. 프리허그 소식에 명동 일대가 마비되고, 지나간 출연작 다시보기 열풍이 불었으며, 무심코 지나칠 만한 손버릇 하나까지 주목받는다. tvN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 유연석. 데뷔 10년 만에 경험하는 폭발적인 인기에도 들뜨지 않는 차분함이 언제나 한결 같던 칠봉이와 오롯이 겹친다. "어딜 가든 반갑게 맞아주셔서 기분이 너무나 좋아요. 특히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가 사랑받아서 기쁩니다."

'1만 시간의 기다림'은 응답받지 못했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첫 사랑을 이루지 못한 캐릭터. 드라마가 끝났어도 여운은 쉬이 가시질 않는다. 결국 나정이(고아라)와 쓰레기(정우)를 결혼시킬 거면서 왜 끝까지 칠봉이를 희망고문 했는지 제작진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결말을 모르고 덤볐지만 나정의 남편이 누군가는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칠봉이의 진심이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될 수 있을까만 생각했죠. 저 자신도 충분히 공감했고 감정 이입해서 봤으니까 괜찮아요."

2002년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어느날 골목길에서의 우연한 만남. 사투리를 쓰는 그녀(정유미)를 돌아보던 칠봉이의 미소가 작은 위안이 될까. "칠봉이의 결말도 마음에 들어요. 첫 사랑에 대한 추억도 간직하고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도 열어뒀잖아요. 그녀와 칠봉이가 인연이 아니었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나정이에게 아파트마저 5000만원이나 싸게 전세로 내준 칠봉이의 모습에 SNS에서는 '호구'라는 얘기도 들린다고 전하니, 유연석은 '푸하하' 웃음과 함께 "메이저리거니까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겠냐"며 한사코 "괜찮다"고 한다.

실제로도 유연석은 가슴 아픈 짝사랑을 경험했다. 눈 내리던 밤 "언젠가 네 곁에 누군가가 없다면 그땐 나와 연애하자"며 나정의 손을 잡았던 칠봉이처럼, 그도 이별을 준비하며 짝사랑하던 친구의 손을 잡았다. 촬영 중에는 고아라와 지나간 사랑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캐릭터와의 밀착력이 뛰어났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걸까. 유연석에게 나정이가 아닌 다른 선택을 주문하니 "아직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다시 기회가 온다 해도 나정이랑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을 것 같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이지만, 얼마 전만 해도 악역 연기로 강하게 기억됐다. '건축학 개론'의 강남오빠, '늑대소년'의 부잣집 아들 캐릭터 덕에 욕도 실컷 먹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의 신원호 PD는 유연석에게서 선한 얼굴을 발견했다. 그리고 MBC '구가의 서' 촬영 막바지에 있던 그를 불렀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 유일한 서울 남자.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에서 가장 개성이 약한 캐릭터. 하지만 그 누구보다 유연석 자신과 닮아 있는 캐릭터가 칠봉이였다. "캐릭터에 접근할 수 있는 포인트가 뚜렷하지 않았고, 실제 저와 맞닿아 있다 보니,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렇게 연기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을 많이 했죠.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에 녹아들면서 점점 편안해지긴 했지만, 연기하는 것이 무척 어렵더라고요."

에이스 투수 칠봉이를 맞이하기 위한 유연석의 준비도 남달랐다. 'H2' 같은 야구 만화와 야구 드라마를 참조하며 분위기를 익혔고, 틈틈이 어깨 운동과 투구 연습을 했다. 칠봉이가 야구하는 장면에는 특히 혼신을 쏟았다. 유연석은 "야구장이 무척 멋있는 공간이라 느꼈다"고 했지만,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래서 유연석이 아닌 칠봉이는 상상할 수가 없다. '응답하라 1994' 또한 마찬가지. 그럼에도 '응답하라 1994'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어땠을까? 약간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정작 저는 예전에 하던 대로 작품 활동을 했던 건데, 주변의 시선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응답하라 1994'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또 다른 작품에 임하고 있었겠죠. 탐구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찾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었을 거예요."

칠봉이의 돌직구처럼 흔들림 없는 배우, 유연석의 다음 선발등판이 기대된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