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꿈과 현실 속에서 방황한다. 꿈을 따르면 대부분 배고프다. 반면 현실에 순응하면 '쳇바퀴 속 삶'을 피할 수 없지만 배는 부르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꿈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택한다.
'국내 경보 간판'이었던 김동영(34·일본 후지대) 역시 마찬가지 고민을 했다. 현실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소속팀 삼성전자에서 재계약을 제시했다. 연봉도 상당했다. 은퇴 뒤에는 지도자 생활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재계약 제의를 마다했다. 2013년 2월 홀홀단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이와테현 후지대 학생 겸 육상부 플레잉코치로 변신했다. 10개월간의 학교 생활을 마치고 겨울 방학을 맞은 김동영을 2일 만났다.
▶개척자 DNA
다짜고짜 '고생길'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김동영은 "개척자 DNA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자신의 삶이 지나온 궤적 그대로 선택을 내렸단다.
김동영은 마라톤 선수였다. 서울시청에 들어간 뒤 경보로 진로를 바꾸었다. 지구력은 좋았지만 파워가 부족했다. 20㎞ 경보에 부적합했다. 2004년 50㎞ 경보로 주종목을 바꾸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도전을 놓고 고민할 때마다 그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도전을 선택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 육상 사상 처음으로 경보 50㎞에 출전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총 3차례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5위까지 올랐다. 어중간했던 마라톤 선수는 한국 최고의 50㎞ 경보 선수가 되어있었다.
일본행도 '개척자 DNA'에 충실히 따른 결정이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후 매너리즘에 빠졌다. 운동을 해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허탈감은 더 심해졌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고 관심가져주지 않는 비인기종목의 한계를 절감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대회 참가차 자주 찾았던 해외가 생각났다. 유럽에 갈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문화적인 이질감이 덜한 일본이 더욱 끌렸다. 일본 역시 유럽에 못지 않은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포트폴리오를 일본 대학과 클럽에 돌렸다.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심사숙고한 끝에 이와테현 후지대를 선택했다. 선수가 직접 유학을 간 경우는 한국 육상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학생 김동영
플레잉코치로 갔지만 정식 신분은 학생이다. 후지대 경영법학과 스포츠과정 1학년으로 들어갔다. 한학기에 24학점을 이수해야 했다. 학사관리는 엄격했다. 한 과목당 3번 결석하면 낙제였다. 장학금을 받고 온 입장이라 '낙제=퇴학'이었다. 노력 외에 다른 정답은 없었다.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만 익히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선수들을 가르치고 자신도 운동을 했다. 오후 9시 집에 돌아오면 예습과 복습, 그리고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3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 3개월간은 교수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칠판 필기를 보고 동료 학생들에게 물어보아야 내용이 이해가 갔다. 조금씩 귀가 트이기 시작했다. 김동영은 "아직 못알아듣는 부분도 많긴하다. 그래도 노력하니까 이제 꽤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말했다. 틈틈이 대회에도 나갔다. 2013년 3월 열린 전일본경보대회에서는 10㎞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밀알이 되고 싶다
1학년을 끝낸 김동영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의 체계화된 육상 시스템'이었다. 거의 매주 일본 각지에서 육상대회가 열린다. 좋은 기록을 세우면 상위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다이아몬드리그까지 연결되어 있다. 대회 체계가 잘 잡혀 있으니 저변도 넓어질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선수들이 경쟁하며 서로 발전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육상 지식과 기술 수입에도 적극적이다. 대회에 출전하고 공부하면서 일본 육상의 모든 것을 하나씩 배우고 있다.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 육상의 발전'이다. 김동영은 "지금 배우는 많은 것들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김동영은 "후배들도 많이 건너와서 선진 시스템을 배웠으면 좋겠다. 내가 그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기술과 시스템상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면 줄일수록 한국 육상은 발전할 것이다. 그 밀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