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지만, 열정만큼은 '리얼'이었다.
여자프로농구 레전드들이 KBS 예능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체능'팀과 한 판 맞대결을 펼쳤다. 5일 춘천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올스타전 오프닝경기로 열린 W레전드-연예인팀 경기는 본경기만큼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W레전드팀의 면면은 화려했다. 전주원(우리은행 코치) 정은순(KBS N 해설위원), 유영주(KDB생명 코치) 정선민(전 국가대표 코치) 김은혜(전 우리은행)가 스타팅멤버로 나섰다. 과거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에서 4강 진출을 이끌었던 황금멤버가 주류였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유영주의 비하인드 패스를 받은 정은순이 골밑슛을 성공시키며 포문을 열었다. 호흡을 맞출 시간은 부족했지만, 한국여자농구를 이끌었던 레전드들답게 눈빛 교환만으로 환상적인 득점을 만들어냈다.
연예인팀은 W레전드들의 실력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몸싸움이 시작됐다. 박진영이 오펜스파울을 범하는 과정에서 정은순이 코트에 머리를 꽝 하고 부딪힐 정도로 초반부터 분위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이벤트 매치답게 애교 섞인 투정도 쏟아졌다. 터치아웃과 파울에서 연예인팀에 연달아 유리한 판정이 나오자, 전주원은 김민지 심판에게 "이건 사심 판정이야!"라면서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정은순은 포스트업 공격에 훅슛까지 선보이면서 골밑을 지배했다. 이에 연예인팀은 남자프로농구 선수출신인 우지원 해설위원을 투입해 맞불을 놨다. W레전드는 박정은 삼성생명 코치를 투입하며 외곽을 강화했다.
박정은은 3점슛 3개를 몰아치며 21-14로 점수차를 크게 벌렸다. 이때부터 연예인팀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우지원은 W레전드의 주득점원 박정은을 집중마크했다. 양팀의 에이스인 우지원, 박정은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운동을 쉰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W레전드는 전반 막판부터 급격한 체력저하를 보이기 시작했다. 공격을 마친 뒤, 백코트가 되지 않아 손쉽게 속공을 허용했다. 결국 25-31로 역전을 허용한 채 전반을 마쳤다.
후반에 선수들을 대거 교체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체력 문제는 극복하기 힘들었다. 전반 맹활약을 펼치던 정은순은 후반엔 백코트 시 상대선수의 팔을 부여잡고 주저앉는 모습을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W레전드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경기 막판 연예인팀이 느슨해진 사이 유영주가 벼락 같은 3점슛을 터뜨리며 추격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공격에서 3초 바이얼레이션을 범하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막판 불꽃을 태우던 유영주는 코트에 드러누워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체육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경기는 59대51로 연예인팀의 승리로 끝났다. 승패를 떠나 모처럼 코트에 선 W레전드들은 함박웃음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스타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도 받는 등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90년대 인기스타인 박진영에게 사인공세를 펼치며 레전드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연예인팀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김 혁은 "처음엔 사실 좀 얕봤는데, 역시 레전드는 레전드더라"며 "쉬엄쉬엄 뛰다가 나중엔 정말 전력을 다해 뛰었다. 레전드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스러운 자리였다"고 했다.
지난 시즌까지 현역으로 뛴 삼성생명 박정은 코치는 3점슛 5개를 성공시키며 녹슬지 않은 슛감각을 자랑했다. 박 코치는 "사실 상대를 만만히 봤는데, 다들 예능이 아니고 리얼이더라. 그래도 농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느껴져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확실히 체력이나 높이 면에서 밀렸다. 그래도 어렸을 때 선배들과 함께 하던 패턴이 갑자기 나오는 등 눈빛만 봐도 통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올림픽 때 대표팀 멤버들과 함께 해서 더욱 뜻깊었다"고 덧붙였다.
초반 맹활약을 펼치다 급격한 체력 저하로 고전한 정은순 해설위원은 "체력이 안 되는 걸 확실히 느꼈다. 오랜만에 뛰어보니 해설할 때 말만 앞서서는 안되겠더라"며 웃었다.
춘천=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