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K-POP 열풍이 시작됐다. 호주 대륙의 서쪽 끝 퍼스(Perth). 아주 작은 불씨 정도일 거라 예상했지만, K-POP의 열기는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11월 29일과 30일 퍼스에서 열린 '2K13 필 코리아(2K13 Feel Korea)' 행사를 찾았다. 서호주의 주도인 퍼스는 시드니에서 비행기로 4~5시간 떨어진 곳. 호주 사람들조차 퍼스에 갈 때 해외에 가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인구는 서울의 5분의1 수준인 200만명, 교민은 고작 200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퍼스의 K-POP 열풍을 보며, 호주가 유럽과 남미에 이은 K-POP의 새로운 기착지가 될 거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퍼스를 달군 "아이 러브 K-POP"
30일 저녁 퍼스 외곽에 위치한 '챌린지 스타디움'은 5000명의 팬들로 꽉 찼다. 퍼스 최초의 K-POP 공연 개최 소식에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그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K-POP 뮤지션들이 소개될 때마다 공연장은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제대 후 첫 해외 공연을 갖게 된 휘성은 '인섬니아(Insomnia)' '위드 미(With Me)' 등의 히트곡으로 초반 분위기를 달궜다. '가슴 시린 이야기'를 부르던 도중 음향사고로 반주가 끊겼지만 오히려 의도된 무대 연출로 느껴졌을 만큼 보컬의 매력의 넘쳤다. 현지팬들은 휘성의 진한 감성에 열광하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K-POP의 확장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무대였다.
'차세대 디바' 에일리가 등장하자 남성팬들의 함성이 커졌다. 비욘세의 '크레이지 인 러브(Crazy in Love)'에 맞춘 섹시한 의자춤을 선보인 에일리는 노래를 부르면서 팬들과 눈을 맞췄다. 데뷔곡 '헤븐(Heaven)'부터 '보여줄게', '유앤 아이(You&I)'까지 에일리의 파워풀한 고음이 폭발할 때마다 객석의 함성도 폭발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현지팬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마지막 엠블랙의 순서에서 객석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엠블랙은 '모나리자', '전쟁이야', '스모키 걸', '오 예(Oh Yeah)'를 연달아 부르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멤버별 솔로 파트와 절도 있는 군무가 나올 때마다 귀를 찢을 듯한 함성이 함께했다. 재킷을 내려 팔 근육을 보여준 이준의 즉흥 퍼포먼스에도 객석이 자지러졌다. "이번이 두번째 호주 방문인데 언젠가 단독 공연을 열어서 호주 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멤버들의 소감이 통역을 통해 전달되자 객석은 또 다른 기대감으로 들끓었다.
K-POP이 중심이 된 공연이었지만 한국 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공연도 곁들여졌다. 전체 공연 오프닝을 맡은 넌버벌 퍼포먼스팀 옹알스는 재치 있는 코미디와 환상적인 저글링, 그리고 감탄을 자아내는 비트박스를 버무려 객석을 한바탕 웃겼다. 웃음이란 만국공통어로 교감한 옹알스의 무대는 단연 돋보였다. 빅뱅, 2NE1, 인피니트 등의 안무를 담당한 댄스팀 T.M.F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현지에서 선발된 팬들도 참여해 더욱 뜻 깊었고, 이날 공연의 MC까지 맡은 알렉산더는 노련한 진행과 로맨틱한 솔로 무대로 여성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전 출연진이 모두 무대에 올라 팬들에게 사인볼을 던져주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 후에도 팬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공연장 밖으로 나온 팬들의 얼굴에도 여흥이 가득했다. 공연을 본 카라(15) 씨는 "K-POP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댄스, 퍼포먼스까지 모두 좋다. K-POP은 정말 어메이징하다"며 활짝 웃었다.
▶K-POP의 민간 외교 시작됐다
K-POP 열풍은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연에 앞서 29일 '콜린스 스트리트 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어 교실과 댄스 교실은 SNS 홍보만으로도 성황을 이뤘다. 댄스 강습을 맡은 T.M.F는 다소 어려워 보이는 지드래곤의 '원 오브 어 카인드(One of a Kind)' 안무를 골랐다. '강남스타일'을 비롯한 인기곡의 경우 이미 안무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팬들은 오히려 어려운 안무를 배우는 걸 더 좋아한다고 했다. 땀 범벅이 된 150여명의 참가자 중 실력자 8명이 선발됐고 이들은 30일 공연 무대에 오르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참가 신청 접수 1분 만에 마감된 한국어 교실은 옹알스와 알렉산더가 진행을 맡아 빙고 게임 형식으로 진행됐다. 빙고 칸의 단어를 지울 기회를 얻기 위해 'K-POP 맞추기' 게임이 진행되자, 전주를 1초만 듣고도 참가자 절반 이상이 손을 번쩍 들어 '정답'을 외치는 진풍경이 여러 번 연출됐다.
이번 공연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서호주대학교(UWA) 유학생 서주현(21) 씨는 "외국 친구들이 나도 잘 모르는 한국 가수와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K-POP의 인기를 실감했다. 특히 싸이의 '강남스타일'이후 열기가 더 뜨거워진 걸 느낀다. 그동안 퍼스 공연을 손꼽아 기다린 팬들이 정말 많았는데 이번에 공연이 열려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현지인 케이시(16) 씨는 "한국에 대해 아는 건 태권도가 전부였지만 K-POP을 알게 된 후 한국어를 배워서 간단한 자기소개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며 취재진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이동욱 시드니 한국문화원장은 "현지 지상파 방송사 SBS는 라디오로 '팝 아시아(Pop Asia) 프로그램을 통해 K-POP을 매일 방송하고 있다. TV의 경우는 주 1회 방송했다가 주말 2회(2시간씩)로 늘렸고 최근에는 월요일(1시간)에도 방송을 시작했다"며 현지 미디어의 높은 관심을 소개했다.
이번 '2K13 필 코리아' 공연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주호주한국대사관, 주호주한국문화원 등이 공동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외교부, 한국관광공사가 후원했다. 한국의 안정적 광물자원 공급국이자 자원개발 해외투자 1위 대상국인 호주의 '코리아 위크(Korea Week)'와 연계해 진행됐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의 이팔성 이사장은 "앞서 2월 브라질과 9월 캐나다에서도 한글 교실과 댄스 교실을 열었는데 참석자 중 현지인의 비율이 70% 이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라 본다. 서호주에서 K-POP의 열기가 엄청난 것을 보면서 문화산업과 실물경제가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전했다. 퍼스(호주)=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