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포항 감독은 최근 선두 탈환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제로톱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2선 공격수 4명이 변화무쌍하게 자리를 바꾸며 상대 수비라인을 흔드는 제로톱은 지난 시즌 후반기 포항이 만들어낸 '명품 브랜드'였다. 올 시즌 초반 박성호 배천석이 맹활약 하면서 잠시 밀려났다. 그러나 스플릿 세상에선 제로톱이 유일한 무기였다. 원톱, 투톱 등 다양한 공격시도가 상대 수비에 막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선두 자리도 울산에게 넘겨주면서 '더블(리그-FA컵 우승)의 꿈'도 멀어져 갔다. 황 감독은 지난해의 추억을 떠올렸다. 주저없이 제로톱 카드를 꺼내들 수 있었던 이유는 2선 공격진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명주 김승대 노병준 신영준 등 측면과 중앙 모두 커버 가능한 자원이 즐비했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었다. 자신이 현역시절 달았던 등번호 18번을 물려 받은 고무열이다. "(고)무열이는 측면 뿐만 아니라 중앙, 원톱 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다. 제로톱에서의 활용 가치는 충분하다."
노림수는 적중했다. 고무열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가진 수원과의 2013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36라운드에서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상대 수비라인의 눈이 볼에 쏠려 있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쇄도해 들어가 가볍게 득점을 마무리 했다. 최근 2경기서 1골-1도움을 작성하며 달아오른 공격본능이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고무열의 천금같은 골로 포항은 승점 65가 되면서 선두 울산(승점 70)과의 승점차 5점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4월 11일부터 이어오고 있는 수원전 무패 행진도 7경기(6승1무)째로 늘렸다.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작성한 고무열은 23세 이하 선수 중 프로에서 3년 이내 활약하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플레이어상과도 더욱 가까워졌다.
황 감독은 "측면에 세웠다가 안쪽으로 파고드는 전술 변화를 택했다. 전방으로 투입한 것이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 같다. 중요한 순간 득점을 해줬다"며 고무열의 활약을 칭찬했다. 3경기 연속 자신의 발로 승부를 결정지은 고무열의 만면엔 웃음이 가득했다. "내 몸이 좋은 것보다 팀 전체가 (FA컵 우승으로) 부담을 턴 게 좋은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고무열은 "나 뿐만 아니라 포항 선수들에게 제로톱이라는 전술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더블의 꿈은 유효하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파죽지세의 울산을 따라잡을 수 있을진 미지수다. 고무열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리 입장에선 더욱 재미있어진 구도다. FA컵에서 우승했다고 목표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울산을) 따라가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역전의) 기회는 올 것이다."
수원=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