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는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번 빠지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서도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징크스를 가진 자는 조급한 반면, 만든 자는 여유롭기만 하다.
3일 오후 부산아시아드경기장에서 펼쳐진 2013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35라운드에서 맞닥뜨린 부산과 포항이 딱 그렇다. 스플릿 세상에서 표정은 정반대다. 그룹A 무승(3무4패) 중인 부산은 울상, FA컵에 이어 리그 정상까지 도전 중인 포항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두 팀만 놓고 보면 차이가 없다. 2012년부터 부산과의 7차례 맞대결에서 무승(5무2패) 중인 포항이 더 조급하다. 부산은 포항만 만나면 신바람을 냈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부산전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인천전을 직접 관전한데 이어 전북-부산 간의 맞대결 비디오 분석에 열을 올렸다. 해답은 제로톱이었다. 기존 원톱 전술을 버리고 고무열 김승대 이명주 노병준 등 2선 자원이 순환하는 공격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격) 형태를 바꾸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부산을 상대로 제로톱 공격이 나름대로 효과를 본 점에 착안했다." 간절함이 묻어났다. 선두 울산과 승점차가 한 경기 이상 벌어진 상황에서 부산에 발목을 잡히면 더블(리그-FA컵 우승)의 꿈은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 총력전을 다짐했다. "앞만보고 갈 생각이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오늘은 선수들이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윤성효 부산 감독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스리백 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31일 전북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승부수였다. 포항전 무패 비결을 묻자 특유의 허허실실 웃음으로 맞받아쳤다. "무승이 길어지다보니 포항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을 뿐이다. 우리는 내년을 준비하는 단계다." 웃음 속에 숨긴 비수는 굳이 꺼내들지 않았다.
황 감독의 승리였다. 포항은 7전8기 끝에 부산을 꺾었다. 전반 22분 부산 장학영에게 선제골을 내줄 때만 해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러나 전반 24분 김승대의 동점골에 이어 24분 터진 '해병용사' 김원일의 역전 결승골로 전세를 뒤집었다. 후반 29분 이명주의 쐐기골까지 터지자 황 감독은 벤치 앞으로 달려나와 두 주목을 불끈 쥐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부산전 무승의 아픔을 훌훌 털어냄과 동시에 승점 62로 60점 고지를 넘어서면서 더블의 꿈을 이어갔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황 감독의 표정은 홀가분함과 담담함이 교차했다. "그동안 부산에 7경기 동안 이기지 못했다. 오늘은 심기일전 하자고 했는데,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승리할 수 있었다."
격차는 여전하다. 인천을 꺾으며 승점 3을 추가한 울산(승점 67)이 포항(승점 62)과 5점 간격을 유지 중이다. 남은 4경기 구도에 따라 순위는 뒤바뀔 수도 있다. 황 감독은 12월 1일로 예정된 울산과의 리그 최종전을 승부처로 보고 있다. 그는 "마지막 경기를 결승전으로 보고 있다"며 "울산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남은 기간 최대한 집중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부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