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깨지기 마련이다.
삼성 이승엽의 표정은 담담했다.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57호 홈런을 쏘아올렸다. 발렌틴은 15일 도쿄 진구구장에서 열린 한신과의 경기에서 시즌 56, 57호 홈런을 연속으로 뽑아내며 한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 2003년 삼성 이승엽이 달성한 기록을 10년 만에 깬 것이다. 물론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기록(55홈런)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됐다.
지난 14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의 경기에 앞서 이승엽의 의견을 들었다. 이승엽은 발렌틴의 홈런 행진에 대해 감탄을 쏟아냈다. 이승엽은 "정말 대단하다"라고 운을 뗀 뒤 "내가 오릭스에 있을 때 잠깐 보기는 봤는데, 직접 치는 것을 본 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였다. 파워도 대단하고 공을 보는 눈도 좋다. 빈틈이 없는 타자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발렌틴은 네덜란드대표로 지난 3월 WBC에 참가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한국전에 4번 타자로 나서 3타수 1안타 1타점을 올리며 2라운드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승엽은 "이달 들어서인가 최근 몇 경기 동안 못쳤다고 들었는데, 몰아칠 때 보니까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 밖에 안 들더라"며 "일본에서는 용병이 뛰기가 참 쉽지 않은데 그 정도로 활약하는거 보면 훌륭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며 감탄을 쏟아냈다.
발렌틴은 지난 8일 주니치전, 10~11일 히로시마전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날린데 이어 이날 한신을 상대로 2홈런을 뽑아내면서 몰아치기 능력의 절정을 과시했다. 11일 히로시마전에서 1964년 요미우리의 오 사다하루, 2001년 긴테쓰의 터피 로즈, 2002년 세이부의 알렉스 카브레라 등 3명이 공동 보유한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루며 주목을 받았다. 지금과 같은 페이스라면 배리 본즈가 가지고 있는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73홈런)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아시아권 최초로 60홈런 시대를 열 수도 있다. 야쿠르트는 페넌트레이스 18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이승엽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홈런 아시아 신기록이 바뀌게 된 것은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승엽은 "우리하고 일본은 리그가 다르다. 내 기록은 한국 기록이고, 발렌티엔은 일본 야구 기록이다. 무대가 다르다"면서 "물론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그런 기록을 세웠다면 훨씬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