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선동열 감독(50)은 현역 시절 '국보급 투수'로 명성을 떨쳤다. '밥 먹듯' 마운드에 올랐고, 한 번 나오면 '주구장창' 던졌다.
그저 많이 나오고, 많이 던지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한국무대 11시즌 동안 통산 146승(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위력적인 피칭 덕에 상대는 불펜에서 몸을 푸는 선 감독의 모습만 봐도 경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SUN의 지론, 무의미한 한계투구수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투수들에겐 '보직'이 생겼다. 선발로 던지고 이틀 뒤 마무리투수로 3이닝씩 던진 과거와는 다르다. 이젠 5명의 선발로테이션이 짜임새 있게 돌아가고, 중간계투와 마무리도 필승조와 추격조가 나눠져 있을 정도다.
선 감독은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 무용론'을 갖고 있는 사령탑 중 한 명이다. 단어 뜻 그대로 '가치' 있는 지표는 아니란 것이다. 평균자책점이 4.50에 이르는 것은 물론, 선발투수가 6이닝만 던지면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시각에 대해 단순히 '본인이 그렇게 던졌으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 감독은 프로 사령탑 생활을 시작한 뒤로 아마추어 투수들에게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21일, 대구 상원고 좌완투수 이수민(18)의 혹사 논란이 미국 CBS스포츠를 통해 보도됐다. 이수민은 올해 7경기(6경기 선발)에 등판해 총 투구수 974개로 경기당 평균 139개를 기록중이다. 지난 19일 주말리그 왕중왕전 16강서 기록한 179개가 최다투구였고, 지난 3월 한 차례 구원등판해 기록한 100개가 최소였다.
선 감독에게 아마추어 투수의 혹사 기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자신의 예를 들며, "과거엔 300개도 던지고 했다. 난 연장 13회까지 던지다 승부가 안나서 다음날 아침부터 14회째 던진 적도 있다"며 "큰 문제는 아니다. 난 연장전 13회까지 던지다 승부가 안 나서 다음날 아침 8시에 일어나서 14회째 던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기도 했다. 고시엔 같은 대회를 하면, 많은 투구나 연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선 감독은 "일본도 300~400개씩 던진다. 사실 사람 몸이라는 게 200개에 맞추면, 맞춰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온 한계투구수 개념, 우리나라에선?
한계투구수는 미국에서 온 것이다. 학생 땐 투구수와 투구이닝에 제한을 둬 혹사를 막는다. 한국야구에 한계투구수 등의 개념이 등장한 것 역시 미국야구의 영향으로 보면 된다.
선 감독은 미국야구에서 단순히 '개수'만 따온 것을 문제로 여기는 듯 했다. 실제로 선 감독의 고교 시절엔 '개수 개념' 같은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큰 부상 없이 현역 시절을 마쳤다. 그 당시엔 치료나 관리 방법 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다.
과거엔 수술을 받으면 '선수생명은 끝'이란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어렸을 때부터 일부러 수술을 받는 선수들이 나올 정도다. 공을 던진 뒤 치료나 수술 후 재활 등에 있어서는 과거보다 몇 단계나 발전한 상태다.
선 감독이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스프링캠프 때다. 캠프 땐 기나긴 페넌트레이스를 소화하기 위해 단단한 체력을 만드는 게 최우선과제다. 투수의 경우, 많은 러닝훈련에 피칭프로그램에 따라 많은 개수의 공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선 감독은 "캠프 때 시켜보면, 한 번에 200개를 던질 수 있는 애들이 없다. 150개도 힘들다. 100개 이상 던지는 애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물론 불펜에서 많은 공을 던지는 것까지 '혹사'라고 말하는 이들에겐 설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공을 던질 기본기가 없기에 많은 투구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기본 소홀히 하는 학생야구, 운동방법 빼놓고 '개념'만 가져왔다
선 감독은 "다들 상체로만, 팔로만 던지고 있다. 그러니 많은 공을 던질 수 있겠나"라며 입맛을 다셨다. 이어 그는 "얘길 들어보니, 요즘엔 학생 때 체력훈련 대신 기술훈련에 비중을 많이 둔다고 하더라. 그러면 안된다. 무슨 일이든 기초가 중요하다. 투수에게 기초는 체력훈련, 그리고 단단한 하체다. 그런데 요즘 어린 애들은 그런 부분에 소홀해 힘으로만 공을 던진다. 기본기가 떨어지는 애들이 대다수다"라고 지적했다.
선 감독은 "사실 투수에게 가장 힘든 건 공을 던지는 일이다. 하지만 하체만 잘 이용해도 300~400개씩 던질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선수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아마추어 때 기초훈련이 부족한 것은 투수 뿐만 아니라 야수 쪽 지도자들도 하는 말이다. 프로에 오면, 기본기부터 완전히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학생야구가 '겉멋'이 든 것이다.
또한 체력훈련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캠프 때 러닝훈련을 시키면, 30대를 훌쩍 넘은 선수들도 못 따라가는 신인 선수들이 많다는 것. 그만큼 기본기나 체력 훈련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증거다.
사실 국내야구를 보면 아직도 운동의 방법은 가져오지 않은 채, 무조건 '많이 던지면 안된다'는 단순명제만 강조하는 게 현실이다. 기초 체력훈련부터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비교하는 건 옳지 않다. 혹사 논란에 고개를 가로 젓는 선 감독의 마음속엔 학생야구에 대한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