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 기자의 레드카펫]내가 아는 '미스 김'이 그 '미스 김'이 맞나요?
국내에 패셔니스타란 용어가 언제 생겼을까. 또 패셔니스타 1호는 누구였을까? 이 대답은 1999년 청룡영화상 레드카펫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레드카펫의 역사는 비포 김혜수와 애프터 김혜수로 나눠진다고 할 정도로 김혜수의 레드카펫은 많은 화제을 모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우아한 스타일,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거기에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격식있는 애티튜드까지 완벽한 스타일로 매번 화제를 모았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룩은 2006년 제 27회 청룡영화상 레드 드레스가 기억난다. 이날 여우주연상 수상자이기도 했던 김혜수는 시상식 때는 청룡을 상징하는 블루 드레스를 입었지만, 굴곡진 가슴골을 깊게 판 클리비지 룩 드레스로 좌중을 압도했다. "내가 오늘 이 무대의 주인공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김혜수의 드레스는 이 날도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화제가 됐었드랬다.
그랬던 그녀가 요즘 '미스 김'으로 변해도 너무 변했다.120여 개에 달하는 자격증 소유자, 슈퍼갑 미스김은 과한 라인의 나팔 바지와 보디가드를 연상케하는 검정 재킷, 뒤에서 보면 "아줌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머리 망까지. 오죽하면 극 중 앙숙인 장규직(오지호)이 "누가 요즘 저런 옷을 입냐?"고 핀잔하겠는가.
내가 아는 '미스 김'이 그 '미스 김'이 맞는 지 헷갈릴 정도다.
'직장의 신'이란 타이틀답게 미스 김의 주무대는 사무실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퇴근하는 무미건조한 사무실이 무대답게 구닥다리 테일러드 재킷 정장과 화이트, 블루 셔츠, 여자들의 욕망이 담긴 화려한 구두와 액세서리 따위는 없다. 예리한 시청자가 아니면 미스 김이 3벌의 정장을 교대로 바꿔입는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스프라이프, 검정단색, 하복 느낌의 정장까지 총 3벌이 있다는데. 여튼 우리네 직장인들 모습과 다르지 않다. 튀지않게 비슷 비슷한 컬러의 옷을 매일 돌려 입고, 이 사람이 어제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도 없다. 그만큼 몰개성적이다.오히려 사고 뭉치 신입 사원 정주리(정유미), 부잣집 럭셔리 신입 사원 금빛나(전혜빈)의 의상이 더 눈에 들어온다. 역설적이게도 '슈퍼 갑'은 미스 김이지만 미스 김의 룩은 잘 규격화 된 '슈퍼 을'의 의상같다. 영화 '하녀'의 윤여정이 재벌가를 쥐락펴락하는 늙은 하녀지만, 매번 정갈하게 입고 나오는 하녀복과 오버랩된다.
김혜수의 스타일링을 맡고 있는 윤상미 인트렌드 실장(이하 '윤 실장)은 "최대한 매일 입는 유니폼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공간에서 입는 옷으로 블라우스 카라도 최대한 크게 만들어서 촌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곤 이런 의상이 찾다가 찾다가 구할 수 없어 디자이너 부띠끄 '맥 앤 로건'에게까지 특별 제작했다. 이렇게 '미스 김의 슈퍼갑룩'이 탄생했다. 남성 정장 패턴을 그대로 재단해 허리만 깊숙이 넣어 어깨가 더욱 강조된 더블 버튼의 테일러드 재킷, 그 라인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 계약직으로 살아가는 미스 김의 버거움으로 다가온다. '괜찮다'고 매일 밤 위로하지만 녹록치않은 계약직 인생 말이다. 마침 미스 김 역에 몰두하던 김혜수가 살이 빠져 허리 인치도 줄었단다. 밤낮으로 바쁜 촬영 스케줄 탓이겠지만 살 빠진 미스 김의 얼굴이 핼쑥하다.
다행스럽게도 김혜수의 '미스 김'은 따분한 낮에 반하는 화려한 밤이 존재한다. 오리엔탈 취향의 몸매를 감싸는 저지 드레스, 한 쪽만 걸이한 언발란스한 귀걸이, 찢어진 티셔츠(김혜수 본인 옷이란다), 손가락 마디에 낀 히피스런 반지까지. 어떤 것도 '규격화'되지 않고 고정관념에 반하는 '미스 김'답지않는 나이트 패션이 그것이다. 그 덕분에 '미스 김'은 내일 머리 망을 질끈 묶고 또 출근할 수 있나보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김겨울 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