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두 투수의 선발 맞대결은 명품 투수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수 없이 상대를 더 마주하고 쓰러뜨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어쩌면 이 첫 맞대결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우완정통파 간의 라이벌전을 만들 초석이 됐는지 모른다.
KIA 김진우(광주 진흥고)와 LG 류제국(덕수상고)이 고교 2학년이던 2000년에 이어 13년 만에 가진 선발 맞대결. 둘은 1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에 나란히 선발로 등판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류제국의 판정승이다. 류제국은 5⅓이닝을 던져 5안타 4실점하고 팀이 7대4로 승리, 국내무대 데뷔전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반면, 김진우는 5회를 버티지 못하고 4⅔이닝 9안타 7실점(3자책점)을 기록하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투구 내용 만을 놓고 보면 누가 승자라 할 것 없이 다음 맞대결을 기약하게 하는, 서로에게 아쉬움이 남았을 법한 경기였다.
▶긴장한 듯한 김진우, 오히려 차분했던 류제국
김진우는 이날 선발등판을 앞두고 류제국과의 맞대결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주위에서 고교시절 라이벌 관계를 떠올리며 새로운 라이벌전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지만 김진우는 "같이 야구를 했던 친구일 뿐이다. 특별히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김진우가 마운드에서 보여준 모습은 평소와 달리 긴장한 듯 했다. 상대가 류제국이었던 것도 있겠지만 이날 송은범, 앤서니의 휴식으로 더 큰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1회부터 제구가 흔들리며 위기를 맞았고, 평소의 공격적인 피칭은 온 데 간 데 없이 인터벌이 길었고 견제도 많았다. 제구 불안은 경기 내내 이어졌다. 포수 김상훈이 겨우 공을 잡아냈을 정도로 영점을 잃은 투구도 여러개였다.
양팀이 2-2로 맞서던 5회, 김진우가 무너졌다. 선두타자 오지환에게 번트안타로 허를 찔린 뒤, 2루수 홍재호의 실책까지 이어졌다. 무사 만루의 위기에서 희생플라이로 1점 만을 내주고 2아웃을 만들어 위기를 넘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손주인이라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싹쓸이 2루타를 허용했다. 초반 제구 불안으로 투구수가 많아졌고 구위가 떨어진 시점에 나온 일격이라 아픔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이날 경기에서 김진우의 우위를 예측한 것은 류제국이 첫 등판의 긴장과 압박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제국은 차분했다. 직구 뿐 아니라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싱커성 투심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1회부터 안정된 제구력을 과시하며 큰 위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긴장감을 즐긴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보였다. 보통 신인 투수들이 이닝 중간 연습투구에서도 최선을 다해 감각을 끌어올리는 것과 달리, 류제국은 베테랑 투수들처럼 슬쩍슬쩍 공을 던지며 변화구 정도를 체크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리고는 본 경기에서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여유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팀 연패 끊은 첫 승, 그러나
김진우는 이미 국내 정상급 우완 선발요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날 패전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잘 던지는 경기가 있으면, 못 던지는 경기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류제국의 경우에는 이날 경기를 자세히 돌이킬 필요가 있다. 승리를 챙기긴 했지만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일단, 선발투수로서 체력 안배가 필요했다. 류제국의 스타트는 상큼했다. 1회 직구 최고구속이 147㎞까지 나왔다. 구속도 좋았지만 공에 힘이 느껴졌다. 그간의 공백이 전혀 느끼지지 않는 구위였다.
하지만 투구수가 50개를 넘어서면서 문제가 나타났다. 4회에 급격하게 구속이 떨어졌고 제구도 흔들렸다. 다행히 류제국에게는 다른 신인들과는 다르게 '경기 운영'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2군에서 호흡을 맞춰왔던 포수 윤요섭과 함께 볼배합과 제구에 더욱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사실 4회 대위기를 맞을 뻔 했다. 선두 김원섭이 직선타로 아웃되기는 했지만 잘맞은 타구였다. 이후 나지완의 볼넷, 최희섭의 우전안타로 1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이범호의 병살타가 나오지 않았다면 대량 실점 분위기였다. 볼카운트 1B2S에서 몸쪽 체인지업을 던져 3루 땅볼을 유도하는 장면이 이날 투구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렇게 위기를 넘긴 류제국은 5회를 무사히 넘기고 승리 요건을 갖췄다. 다행인 점은 향후 개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 류제국은 경기 후 "첫 경기인 만큼 한 타순이 돌기 전까지 너무 긴장을 해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체력 문제는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또 하나, 2개의 피홈런 장면도 아쉬웠다. 2회 홍재호에게 허용한 홈런. 중심타선을 힘겹게 처리한 후 2사에 살짝 긴장이 풀어진 상황에서 나온 불의의 일격이었다. 직구가 몸쪽 높은 곳으로 몰렸다. 6회 나지완에게 맞은 홈런 역시 141㎞짜리 힘 없는 직구가 가운데 높게 몰렸다. 1군에서 살아남으려면 매 순간 집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떠나 한국무대 데뷔 후 첫 등판한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됐고, 팀의 4연패를 끊어냈다는 부분은 박수를 받을 만 하다. 류제국은 "내가 잘던졌다기보다는 이병규 선배를 비롯해 야수들이 너무 잘해준 덕분에 승리했다. 그래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며 "앞으로 선발로 꾸준히 던져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첫 승 소감을 남겼다.
잠실=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