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판 가투소' 김익현(24·부산)은 지난달 큰 실수를 했다. 달콤한 잠에서 깨지 못해 오전 훈련을 불참했다. 프로선수로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윤성효 부산 감독은 참았다. 한 번 의 기회를 더 줬다. 오후 개인 훈련을 지시했다. 그러나 김익현은 오후에도 훈련을 하지 않았다. 윤 감독은 지시를 불이행한 김익현을 크게 혼냈다. 김익현은 "윤 감독님께서 한 번 참아주셨는데 내가 잘못했다. 감독님께서 '내 행동이 팀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깊이 반성했다"고 말했다.
김익현이 '게으름의 늪'에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프로에 데뷔한 뒤 지난 4년간 2군을 전전하면서 만성이 됐다. 김익현은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혼자 겉돌았다"고 회상했다. 2월 태국 전지훈련 당시 "팀에 녹아들겠다"며 '개과천선'을 선포했던 김익현이었다.
하지만 올시즌 또 '게으름 병'이 도졌다. 개막전 이후 2개월간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나태해졌다. 이 때 김익현을 잡아준 것은 '절친' 이범영 골키퍼였다. 부산 북구 화명동에 위치한 아파트에 같은 동 위층과 아래층에 사는 김익현과 이범영은 원삼중 시절부터 연을 맺었다. 이범영은 이번 시즌 김익현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자 쓴소리를 했다. "너 자신을 한 번에 놓지마라. 안 된다고 할 때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마라." 김익현은 친구의 돌직구에 마음을 다잡았다. 경기에 나서지 못해도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휴일에도 남몰래 체력훈련을 하며 기회를 노렸다. 김익현은 "부모님 말씀도 잘 안듣는데 범영이 말은 왠지 잘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다. 5일 대구전이었다. 미드필더 이종원이 경고누적 퇴장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종우의 파트너가 필요했다. 윤 감독은 김익현을 낙점했다. 이후 김익현은 8일 FA컵 32강전과 11일 포항전까지 세 경기 연속 출전했다. 포항전에서는 박종우의 경고누적(3회) 결장으로 이종원과 호흡을 맞췄다. 김익현은 "비록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메웠지만, 경기에 출전하니 행복했다"고 전했다.
가진게 많은 선수라고 평가받는 김익현은 자숙의 시간 동안 '헌신'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그 미덕은 그라운드에서 잘 나타났다. 공격 능력이 출중하지만, 수비와 공수 밸런스에 집중했다.
덥수룩한 턱수염은 김익현의 트레이드마크다. 팀 내 분위기 메이커다. 끼가 넘친다. 그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가 말만 하면 동료들이 웃는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는 프로 입단 이후 오른팔에 문신을 새겼다. 'I WILL BE THE STAR OF THE WORLD.'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의미다. 충분한 스타성을 갖춘 김익현의 꽃이 6년 만에 활짝 피기 시작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