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년 6개월 만에 찾은 친정집이었다. 팬들에게는 1689일 만에 만나는 스타 플레이어였다. '설렘', 이천수(32·인천)와 울산 팬들의 공통 분모였다.
28일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울산-인천의 2013년 K-리그 클래식 9라운드. 울산 팬들은 이천수를 위한 따뜻한 환영을 준비했다. 울산 서포터스석에는 'K-리거 이천수가 보고싶다'라고 적힌 플래카드(지난해 전남과의 임의탈퇴 철회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낼 때부터 나타난 응원문구)에 '이천수'의 이름이 적힌 옛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보였다.
성격이 급한 일부 팬들은 그라운드에 선 이천수를 더 빨리 보고싶은 마음에 경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선수단 버스 도착 통로에 서서 기다렸다. 결국 사인을 받고 흡족해 했다. 이천수도 울산 시절 자신을 응원하던 한 남성 팬의 얼굴을 알아보고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줬다.
이천수는 울산전 출전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수원 시절인 2008년 9월 13일 울산에서 경기를 치른 이후 4년 6개월 만에 밟는 안방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전 김봉길 인천 감독은 "천수에게 '울산전 선발로 나가볼래?'라고 물었더니 '나가겠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하더라. 선수의 마음가짐이 남달라 보이더라"고 전했다.
이천수는 기대 이상의 환영을 해준 울산 팬들에게 높은 질의 경기력으로 화답했다. 이날 왼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이천수는 전반 9분 만에 중거리 슛으로 포문을 열었다. 한 가지 포지션에 국한되지 않았다. 오른쪽 측면 공격수 이석현과 활발하게 포지션 체인지를 이뤘다. 또 팀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는 중원으로 이동해 공격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감독이 주문한 프리롤을 수행했다. 이천수는 0-1로 뒤지던 후반 22분 울산 팬들의 옛 추억을 되살렸다. 오른쪽 측면에서 자로 잰듯한 크로스로 찌아고의 헤딩 동점골을 도왔다. 20일 전북전에서 올시즌 첫 도움을 기록한 이후 두 경기 연속 달성한 공격포인트였다. 이날 풀타임을 소화한 이천수의 친정 나들이는 2대2로 끝을 맺었다. 사이좋게 친정팀과 인천이 승점 1점씩 나눠가졌다.
돌아온 이천수를 위한 팬들의 환영은 경기가 끝난 뒤 절정에 달했다. 울산 서포터스석에서 울린 응원가가 가슴을 찡하게 했다. "천수, 천수, 천수 골~, 천수 골~, 천수 골~." 일명 '이천수 전용 응원가'였다. 이천수가 2002~2007년까지 울산에서 활약했던 시절 아크 서클 왼쪽에서 프리킥 찬스가 나면 울리던 그 응원가였다.
팬들의 격한(?) 환대에 채 감격이 가시지 않은 듯한 이천수는 "편안했다. 다른 경기장보다 편안했다. 감회가 남달랐다. 팬들에게 인사하러 갔을 때 울산 팬들이 반겨주셔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이어 "계속 뛰고 싶다. 너무 쉬었다. 경기에 많이 나가서 경기력을 떠나 축구 팬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 '천수가 돌아왔다'라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래도 이길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이날 경기는 울산도 아쉽겠지만 덥고 힘든 과정 속에서 열심히 했다. 골이 많이 터져 팬들도 재미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천수는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의미있는 선물이었다. 후반 찌아고의 골이 터지자 선수들이 일제히 벤치로 달려가 '요람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천수는 "선수들이 '왜 저 세리머니를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이 임신 중인 와이프를 위해 준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따뜻했던 친정에서 두 가지 선물을 안고 돌아가는 이천수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울산=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