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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진화중' 류현진, 올시즌 몇 승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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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이 진화하고 있다. 직접 부딪히며 체득하고, 점점 더 영리해지고 있다.

LA 다저스 류현진(26)이 점점 괴물의 진가를 보이고 있다. 다섯번째 선발등판에서 또 한 차례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였다.

류현진은 지난 26일(이하 한국시각) 뉴욕 시티필드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해 7이닝 1실점으로 역투했다. 7회까지 투구수는 109개. 3안타 3볼넷을 허용하며 1실점했고, 탈삼진은 8개를 잡았다. 1-1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류현진의 피칭은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고'였다. 데뷔 후 최다 이닝, 최다 투구 기록을 세웠다. 기존엔 6⅓이닝(3일 샌프란시스코전, 8일 피츠버그전), 107개(14일 애리조나전)가 최고 기록이었다. 처음으로 7이닝을 소화하며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학습과 서서히 드러나는 본색, 류현진은 진화하고 있다

특히 이날은 직구가 살자, 서드 피치(Third Pitch)로 자리잡은 슬라이더가 결정구로도 활용되는 등 소위 '되는 날'이었다. 류현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 등판이기도 했다.

타순이 한 바퀴 돌기 전에는 적극적으로 직구를 던지면서 타자들을 압박했다. 비록 평균 89.7마일(144.4㎞)을 기록한 스피드는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지만,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활발히 오갔다.

원하는 곳에 로케이션이 원활히 되니, 변화구의 위력도 배가됐다. 슬슬 변화구의 비율을 늘렸고, 타순이 한 바퀴 돈 뒤엔 적극적으로 초구부터 변화구를 던져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었다. 이때 슬라이더가 주효했다. 빅리그에서 통한다던 서클체인지업이야 그의 전매특허라 쳐도, 슬라이더는 국내에서도 정상급이 아니라고 평가받던 공이다.

이른바 '동반상승' 효과였다. 패스트볼 커맨드가 완벽하자, 다른 공까지 살아났다. 특히 그동안 커브를 많이 던지면서 최대한 감춰왔던 슬라이더의 비율을 끌어올렸다.

사실 다저스는 류현진 영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류현진의 슬라이더에도 주목했다. 단독으로 결정구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다른 공과 함께 쓰인다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류현진은 고교 시절 팔꿈치 수술 이후 팔꿈치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슬라이더는 정규시즌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던지곤 한다. 몸이 충분히 올라온 뒤에야 슬라이더를 꺼내든 것이다. 팔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날의 공격적인 피칭도 눈에 띄었다. 27타자 중 20차례나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무려 74%의 비율이었다. 류현진은 초구부터 힘껏 공을 뿌렸다. 초구 패턴을 직구에서 변화구로 바꾸는 상황 역시 능수능란했다.

지난 21일 볼티모어전에서 초구 때문에 고전한 뒤,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은 모습이었다. 당시 볼티모어 타선은 류현진의 앞선 세 차례의 등판을 완벽히 분석한 뒤, 카운트를 잡기 위해 들어간 공을 손쉽게 쳐낸 바 있다.

▶단순 계산으로 12승? 팀 타선과 팀 성적이 변수다

류현진은 다음달 1일 콜로라도전에 등판할 예정이다. 이날은 현지시각으로 류현진의 4월 마지막 등판이다. 개막 2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류현진은 로테이션에 큰 변화 없이 한 달을 치렀다. 1선발인 클레이튼 커쇼와 류현진 사이에 노장 테드 릴리가 들어오긴 했지만, 잭 그레인키가 부상으로 빠진 현 상황에서 여전히 류현진이 2선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개막 후 한 달을 치른 지금, 이쯤 되면 '류현진이 올해 몇 승을 올릴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대개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투수라면, 건강히 한 시즌을 보낼 경우 최소 30경기 이상 등판하게 된다. 35경기 가량 등판도 가능하다. 한 달에 5~6경기 등판하는 일정으로 6개월여를 뛰게 된다.

류현진 이전에 풀타임 선발로 성공한 박찬호는 어땠을까. 박찬호는 지난 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다저스의 개막 2선발을 맡았다. 현재 류현진과 같은 팀, 그리고 같은 보직이다.

박찬호는 98년과 2000년엔 34경기에 선발등판했고, 99년엔 33경기에 나섰다. 98년에 15승(9패)을 올렸고, 99년은 13승(11패), 2000년엔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인 18승(10패)을 거뒀다. 2000년을 박찬호의 최전성기로 볼 수 있다. 이때 성적을 바탕으로 이듬해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을 맡았고, 2001시즌이 끝난 뒤 FA(자유계약선수)로 '잭팟'을 터뜨렸다.

2000년 4월, 박찬호는 총 5경기에 등판해 3승2패 평균자책점 4.60을 기록했다. 류현진보다 승수는 많았지만, 평균자책점이 안 좋았다. 매경기 최소 6이닝을 소화한 류현진과 달리, 박찬호는 5경기 중 2경기나 6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5월에 2승에 그친 박찬호는 6월에 4승을 쓸어담는다. 5월 말부터 5연승을 달리면서 승수 쌓기에 속도를 냈다. 여름 들어 잠시 주춤하던 박찬호는 8월 중순부터 4연승, 9월에 3연승을 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유독 연승하는 패턴이 많았다. 분위기를 탔을 때 확실히 승수를 쌓았다는 것이다. 이닝 소화나 실점 부분에선 다소 기복이 있었다.

투수의 승리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타선의 도움이다. 아무리 잘 던져도 팀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승리투수와 인연을 맺을 수 없다. 당시 다저스는 평범했다. 내셔널리그 16개 팀 중 팀 득점 8위, 팀 타율 12위를 기록했다.

현재 다저스 타선은 팀 타율은 내셔널리그 3위(2할5푼2리)지만, 팀 득점은 12위에 불과하다. 시즌 초반만 놓고 보면, 류현진은 2000년 박찬호보다 득점지원을 못 받고 있다.

2000년, 다저스는 86승76패로 서부지구 2위를 차지했다. 동부지구의 뉴욕 메츠에 8게임차로 밀리면서 와일드카드도 놓치고 말았다. 순위경쟁에 김이 빠진 9월, 박찬호는 3경기 연속 무실점 경기를 하면서 16, 17, 18승째를 챙겼다. 경기 운영에 있어 조급함이 덜한 경기. 게다가 마지막 두 경기는 지구 최하위 샌디에이고전이었다.

단순한 셈법으로는 첫 달 2승을 올린 류현진은 6개월 가량 진행되는 페넌트레이스에서 12승이 가능하단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류현진의 승수를 예측할 수는 없다. 갑자기 한 달에 1승도 못 올릴 수도 있고, 4~5승을 몰아칠 수도 있다.

박찬호의 전례를 봤을 때, 류현진은 올시즌 34경기 정도 등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복이 있던 박찬호와 달리 보다 안정적인 이닝 소화력을 갖췄다. 아쉬운 건 다저스 타선이 과거만큼 '도우미' 역할을 못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거액의 돈을 쓰면서도 성적은 신통치 않다. 승수 쌓기에 가장 큰 변수가 이 부분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