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 머머전, 리쌍록…'
'스타크래프트1'을 중심으로 한 e스포츠는 지난 2000년대 숱한 명경기를 연출했다. 이 가운데 스타 프로게이머들의 라이벌 대결은 팬들에 의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엄청난 관심을 불러모았고, 자연스레 e스포츠의 인기로 이어졌다.
요즘 e스포츠의 대세로 불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는 5대5의 팀전이라, 아무래도 선수 개개인이 주목받기는 힘든 구조였다. 하지만 1년 이상 대회가 계속되면서 팀뿐 아니라 선수들의 개성 넘치는 플레이와 포지션별 대결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LoL'에서 사실상 첫 선수간 라이벌 구도는 톱 라인을 맡고 있는 '막눈' 윤하운(나진 소드)과 '샤이' 박상면(CJ 프로스트)이 만들어 가고 있다. 직전 대회 결승에서 혈투를 벌인 바 있는 두 선수는 현재 진행중인 '올림푸스 LoL 챔피언스 스프링 2013'에서도 팀의 우승을 위해 뛰는 동시에,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경기 내외에서 장군 멍군
같은 포지션을 담당하고 라이벌답게 서로의 일방적 독주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여름 미국 MLG 섬머 대회 결승에서는 박상면이 윤하운을 제압,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대회인 윈터 시즌 결승전에선 윤하운이 박상면을 상대로 라인전에서 압도했고, 결국 마지막 3세트에서 박상면을 희생양으로 윤하운은 우승과 동시에 MVP까지 거머쥐었다.
절치부심한 박상면의 반격은 바로 재개됐다. 3주 전 스프링 시즌이 개막한 가운데 박상면이 속한 CJ 프로스트는 B조 1위, 윤하운이 속한 나진 소드는 A조 4위에 처져 있다. 박상면은 지난 3일 기습 작전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뒤집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윤하운은 이번 시즌 부진하다.
경기 밖에서도 두 선수의 대결은 흥미롭다. 박상면이 '2012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에서 'LoL 톱 부문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24일까지 진행중인 'LoL 올스타 2013'에 출전할 한국 대표팀 선발전 톱 부문에선 지난 19일 현재 윤하운이 38.1%의 득표율로 박상면의 26.4%를 압도하고 있다. 아직 투표일이 이틀 남아 있는 가운데 박상면이 대역전극을 펼쳐낼지 주목된다.
▶이름값은 윤하운, 업적은 박상면
두 선수는 실력이 비슷하고 팀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LoL'을 대표하는 게이머로 통한다.
일단 이름값이나 스타성에선 윤하운이 앞선다. 윤하운은 국내에서 'LoL'이 서비스되기 시작 전 북미 서버에서부터 유명세를 떨치면서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또 과감하고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이목을 끄는 세리머니 등 스타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라이엇게임즈가 주최한 이벤트 매치 '라이엇 월드 인비테이셔널 2012'에서 진지하게 플레이하는 팀원들과 달리 홀로 예능감을 뽐내며 플레이 해 화제가 된 바 있고, 미국에서 열린 'LoL 월드 챔피언십 시즌2'에서는 통역 없이 영어 방송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등 좀처럼 주눅들지 않은 당돌함이 특기다.
후발 주자인 박상면은 기량이 급성장하며 인지도를 높이는 케이스. 경력은 윤하운보다 짧지만 업적 면에선 이미 뛰어넘었다. 'LoL 챔피언스 섬머 2012'과 'MLG 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챔피언십 시즌 2'과 'LoL 챔피언스 윈터 2012~13'에선 준우승에 오르는 등 불과 반년 사이에 가장 '핫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두 선수가 더 부각되는 이유는 부진의 나락에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프링 시즌, 윤하운은 일부 경기에서 팀의 플레이 성향과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현재 소속팀으로 옮겨야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저돌적이고 개인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후반에는 지나치게 약해지며 팀의 패배를 자초하기도 했다.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것일까. 패배의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던 윤하운은 윈터 시즌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후반 운영을 보완하는 스타일로 변모, 팀 플레이에 녹아드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상면도 데뷔 초기 챔피언 선택폭이 매우 협소하고 맵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잘 다루는 캐릭터만 상대팀이 '제거'(ban) 시키면 게임 내에서 존재감이 없었고, 간혹 이해할 수 없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이면서 팀의 '구멍'으로 불렸다. 하지만 중후반 운영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CJ 프로스트의 팀 컬러에 녹아들면서 상황 판단이나 한타 싸움에서의 역할 이해도가 부쩍 늘었고, 자신이 담당하는 톱 라인에서의 1대1 싸움에서도 뛰어난 운영 능력을 보여주며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어로 거듭나고 있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