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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첫승하던날 치어리더는 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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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지휘한다면, 관중석의 사령탑은 응원단장이다. 경기의 흐름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면 분위기를 더욱 띄우고, 고전할 때는 분위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성적 부진이 이어지면 가장 곤욕을 치르는 게 감독이지만, 응원 단상의 치어리더, 응원단장들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들은 감독이나 선수와 달리 팬들과 맨 앞선에서 직접 마주치는 '창구 직원'인 셈이다.

지난 16일 NC 다이노스를 꺾고 개막 13연패의 수렁에서 빠져 나온 한화 이글스. 그런데 13연패, 대전 홈구장 8연패를 당하는 동안 한화팬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이글스에 성원을 보냈다. 보통 연패가 길어지면 경기장을 찾는 팬의 수가 줄게 마련이다. 또 선수들을 질책하는 욕설이 쏟아지는데, 이상할 정도로 대전구장 관중석에서는 질책보다 따뜻한 격려가 이어졌다. 17일 현재 한화의 올시즌 홈 10경기 평균 관중은 6109명, 지난해 7758명 보다 조금 줄었지만, 연패 충격에 비하면 무난한 수준이다.

팬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고 있는 홍창화 응원단장(33)과 엄노을 치어리더 팀장(24)은 "팬들이 오기로 응원을 한 것 같다. 우리 팀이 언제 이기나, 이길 때까지 오겠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부산 개막 2연전을 마치고 4월 2일 KIA와 홈 첫 경기를 치를 때만 해도 연패가 그렇게 길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홍 단장은 "계속 팀이 패하자 분위기가 점점 경직됐다. 험한 욕설도 나왔는데 그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어린이도 있는데, 욕하지 말아달라. 괴도한 음주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사실 술에 취해 단상으로 돌진한 남성팬도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중앙석에 있다가 응원석까지 달려온 한 남성팬으로부터 "이 XX야. 응원을 좀 더 잘해"라는 욕설도 들었다. 소속팀이 수비를 할 때는 응원을 쉬는데도 그랬다. 홍 단장은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남성팬에게 뛰어가 "얘들을 생각해 욕은 좀 하지 말아달라"고 외쳤단다.

어이없는 플레이, 무기력한 경기가 계속됐지만, 한화 관중석에서는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라는 응원의 함성이 이어졌다. 홍 단장이 2010년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를 개사해 만든 응원가다. 비록 성적은 안 좋지만 한화팬으로서 변함없이 성원을 보내겠다는 다짐이 담긴 응원가다. 홍 단장은 "여자친구 어머니가 사우나에 갔다가 우연히 그 노래를 듣고 아이디어를 줬다"고 했다.

선수단이 연패 탈출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삭발을 했을 때 홍 단장은 또 패하면 자신도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선수 전원이 삭발하고 나선 삼성전에서 한화는 또 패했다. 그날 밤 내야수 오선진으로부터 '죄송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한다. 홍 단장은 다음날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 반쪽을 밀고 V를 새겼다.

13연패 중이던 16일 만난 NC 다이노스전.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 모두 경기 초반 '멘붕'에 빠졌다. 상대가 신생팀 NC이니만큼 연패 탈출이 가능할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1회에 3점, 2회에 1점을 내주고 0-4로 끌려갔다. 홍 단장은 "초반에 NC한테도 큰 점수를 주는 걸 보고 멘탈 붕괴가 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2009년 치어리더를 시작해 줄곧 한화와 함께 해 온 엄 팀장은 성적 부진에 의연했던 한화팬을 자랑했다. 그는 "누군가 팀 성적이 안 좋은데도 크게 흥분하지 않는 대전팬들을 '보살'이라고 했는데, 정말 우리 팬들은 충성도가 높은 것 같다"고 했다.

홍 단장은 경기 전에 선수를 만날 때마다 "오늘은 잘 될 겁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경기 전에는 "오늘은 꼭 이길 겁니다"를 외쳤고, 패하면 "내일은 꼭 이길 겁니다"라고 외쳤다.

16일 NC에 끌려가던 한화는 김태균이 2점 홈런을 터트려 역전에 성공했다. 홍 단장은 "몇 년 전 이도형이 끝내기 홈런으로 12연패를 끊은 적이 있는데, 그때 보다 더 짜릿했다. 2006년 준우승했을 때 그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홍 단장은 2006년 한화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엄 팀장은 2009년부터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다. 서울 출신인 홍 단장이나 부산에서 태어난 엄 팀장에게 한화는 '가족', '신앙'같은 존재다.

치어리더들은 경기 전에 대전구장 근처 식당에서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하고 응원을 준비한다. 시즌 첫 승을 하던 날 경기를 앞두고 엄 팀장과 팀원들은 평소처럼 이 식당을 찾았다고 한다. 엄 팀장은 "그날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가 '밥을 많이 먹어야 힘을 내 응원하지. 밥을 많이 먹어야 이길 거야'라고 했다. 그날 다들 평소보다 식사를 더 했는데 정말 연패에서 탈출했다"고 했다. 엄 팀장은 "계속 밥을 많이 먹어야 우리 팀이 계속 이길 것 같은데, 체중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딜레마다"며 웃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짜릿했던 시즌 첫 승. 그날 엄 팀장은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는 "우는 관중들이 많아 가슴이 찡했다. 눈물을 흘리면 화장이 지워지기 때문에 함부로 울 수도 없었다"고 했다.

연패를 끊던 날 선수, 코칭스태프 못지않게 응원단 식구들에게도 축하 메시지가 빗발쳤다. 홍 단장은 "밤새도록 축하 문자가 이어졌다. 아마 100통은 받은 것 같다"고 했다.

3년 전인 2010년, 홍 단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한화가 우승을 하면 여자친구랑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한화는 우승은 커녕 바닥을 헤맸다. 결국 결혼을 하기 위해 목표치(?)를 수정했다고 한다. 홍 단장은 "이제 4강에만 들면 결혼을 하려고 한다. 올해 꼭 4강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