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센터는 오히려 자신은 국보가 아니라고 말했다.
'국보 센터' 서장훈이 21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19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서 가진 은퇴식 이후 '농구선수' 서장훈으로서 나서는 마지막 자리였다.
서장훈은 자리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직접 작성해온 은퇴 소감문을 읽었다. "오늘로써 27년간의 여행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며 입을 연 서장훈은 침착하게 소감을 말했다. 마지막이었기에 할 말도 많았다.
▶국보센터, 한국농구에 남기는 마지막 조언
은퇴 시기, 공교롭게도 한국 농구가 최대 위기에 처했다는 시점이다. 서장훈은 소감을 말하던 도중 "한국 농구가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떠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겠다. 앞으로 살면서 저는 명예를 더 얻으려 노력하지 않겠다. 돈을 더 벌려고 노력하지 않겠다. 낮은 곳을 바라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지막인 만큼, 그동안 마음 속에 안고 있던 생각들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서장훈은 "이제는 농구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기력이 향상되거나 국제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다"며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 프로야구 성공을 봐서 알지 않나. 단순히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어필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대회에 나가서 잘 하면 뭐하나. ABC 같은 대회에서 우승해도 국가대표가 나가서 경기하는 것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이젠 정말 팬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팔아야 한다. 하루 아침에 인기가 올라가는 걸 기대하는 건 말이 안된다. 문화를 파는 프로농구가 됐으면 한다, 보다 공격적인 홍보나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했으면 좋겠다. 지금 처해있는 농구 환경이나 본인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했으면 한다. 인터넷 기사에 자기 이름 몇 줄 나온다고 스타가 됐다고 착각하거나, 소수의 홈팬들 때문에 현실을 착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장훈 스스로도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기에 현실에 안주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그는 "소위 스타라는 말을 들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함부로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스타라는 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존경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농구계에 스타 소릴 들을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나도 한없이 족하다. 지금 농구에 박찬호 박지성, 예전으로 치면 선동열 차범근 같은 분들이 있나"라고 힘주어 말했다.
오히려 '국보 센터'라는 자신의 수식어가 부끄러운 듯 했다. 서장훈은 "국보는 커녕 너무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국보라고 불리려면, 국민들께 정말 큰 감동을 주거나 국위 선양을 제대로 했어야 한다. 그런데 난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국보란 말은 너무나도 과분한 표현이다. 그만큼 영광이었고 감사드리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창진,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동료들
기자회견 도중 어딘가에서 전창진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석에 앉아 서장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런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전 감독은 "정상에서 내려오는 시점에 김주성이란 선수가 나타났다. 당시 모든 시선이 김주성에게 쏠리면서 맞대결에 대해 민감한 기사가 많이 나왔다. 당시 상당히 속상했을 것 같다"고 질문했다.
서장훈은 "지금보다 젊었을 때라 생각도 젊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어느 시대나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에게 더 큰 기대를 갖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땐 비교당하는 게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게 있어서 더 자극받고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답했다.
교과서 같은 서장훈의 답에 전 감독은 웃으며 "약한데~"라고 했다. 사실 은퇴식 때도 그랬지만, 서장훈은 기자회견에서도 전창진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큰 형님이자 멘토셨다. 감독님이 1년간 넓은 마음으로 배려해주시지 않았다면, 마지막 떠나는 길이 외로웠을 것 같다. 마지막에 복을 받는구나 생각한다"며 웃었다.
서장훈은 같이 한 번 뛰어보고 싶은 선수들을 꼽아달라는 질문이 나오자 많이 고민했다. 그는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며 많이 비교가 된 (현)주엽이. 프로에서 잠깐 같이 뛰었지만 다시 같이 한 번 해봤으면 좋아았겠다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함께 한 (문)경은이형, (이)상민이형, (우)지원이형과 다시 한 번 대학 때 그 모습을 재현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힘들 때나 좋을 때나 제 곁에서 함께 위로가 됐던 (김)승현이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은 들었다"고 했다.
▶언제나 컸던 부담감, 진정성 있게 이해해줬으면…
서장훈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고 털어놨다. 휘문중 2학년 시절 처음 공식대회에 참가해서 첫 골을 넣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아쉬운 경기를 묻자 "어느 정도 대중들에 이름을 알리고 난 뒤엔 거의 모든 시합이 아쉬웠다. 시합이 끝나고 나면 항상 '좀더 잘 했을 수 있는데…', '왜 이것밖에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서장훈은 자신의 승부욕으로 인해 일부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점을 인정했다. 그래도 진정성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남겼다. 서장훈은 "어린 시절 처음 만났던 코트는 편안한 안식처 같았다. 잘 하지 못했어도 코트 안에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너무 많은 관심을 받게 됐고, 그 많은 관심은 제가 농구에서 느꼈던 행복을 무거운 부담으로 바꿔놨다"고 고백했다.
이어 "항상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를 누르고,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가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게 되다 보니 승부에 더 집착하고 걱정했다. 누구보다 잘 하려고 노력했지만, 내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조금 과한 제 모습들이 불편하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장훈은 "100번 해서 한 번 져도 나 때문에 진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학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지면 큰일난다 생각하니 예민해졌다. 경기에서 억울한 부분을 어필했는데 보기 불편하셨다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좋은 경기를 하는 게 최고의 팬서비스라는 신념을 진정성 있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서장훈은 자신의 농구인생에 대해 "굳이 점수를 준다면 30점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좋은 꿈 잘 꿨다"며 활짝 웃었다. 이제 그는 그의 바람대로 '국보센터'란 수식어를 내려놓고 조용하고 평온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비록 자신은 '국보센터'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한국 농구사에 서장훈이란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