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제일 나중에 나가요."
류현진은 LA다저스 스프링캠프에서 가장 늦게 퇴근한다. 아침 일찍 모여 짧고 굵게 훈련하고 오후 일찍 퇴근하는 메이저리그식 훈련에 대해 "나한테 딱이다"라고 말은 하지만, 아직은 영 어색한 모양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 오후 3시30분에서 4시 정도에 집에 가곤 한다. 이제 러닝훈련에서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미국식 훈련에 적응한 상태지만, 아직 생활은 '한국식'이다.
그날 그날의 훈련 스케줄에 따라 다르지만, 류현진은 오전 7시면 훈련장에 도착한다. 아침 일찍 움직여 오전에 대부분의 일정을 마치는 메이저리그 훈련의 특성상 한국보다 하루를 일찍 준비하게 됐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허허벌판 애리조나 지역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는 건 곤욕스럽다. 딱히 집 밖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대신 류현진은 클럽하우스에서 최대한 늦게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훈련은 늦어도 1시30분 안에 끝난다. 들어가서 치료를 받고, 느긋하게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의 고급시설인 월풀 목욕까지 마치고 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떠난 상태다.
다행히 라커룸엔 류현진을 즐겁게 만드는 놀이도구가 있다. '탁구'다. 류현진은 평소 탁구를 치면서 동료들과 친분을 쌓고 있다. 아직 말도 제대로 안 통하지만, 가벼운 놀이를 통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다.
실제로 류현진의 친구가 된 멕시코 출신 내야수 루이스 크루즈와는 인터뷰 때도 "탁구채 대신 숟가락으로 쳐라", "그럼 난 배트로 치겠다"는 등의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가 됐다. 탁구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류현진은 지난주 돈 매팅리 감독과 탁구를 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탁구 치는 장면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류현진은 "감독님께 콜드 게임 패배를 당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후 불타는 승부욕에 탁구 치는 횟수가 급증했다.
동료들의 퇴근 행렬 속에 탁구대를 지키다 보면, 어느새 혼자 남게 된다. 다저스의 한국계 직원과 탁구를 치기도 하지만, 결국 집에 가야 할 시간이 오고 만다.
집에선 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운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영화 '타짜' 같은 경우엔 이미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다.
저녁은 함께 생활하는 에이전트 전승환 이사와 함께 먹는다. 한국음식을 잘 하는 전 이사와 함께 요리하는 재미도 조금씩 느끼고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반찬을 사오기도 한다.
오전 오후 야간훈련까지 하는 한국프로야구 스프링캠프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다. 하루를 보다 일찍 시작해 해가 중천에 뜰 때면 훈련을 마치고 귀가한다.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기 몫이다.
류현진도 어느덧 애리조나 생활이 3주째다. 이젠 그도 어느 정도 해법을 찾은 것 같다. 바로 '공부'다. 류현진은 "컴퓨터로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저녁 먹고 할 것도 없는데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며 웃었다.
글렌데일(미국 애리조나주)=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