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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축구협회장 선거, 해법은 선거제도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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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스템 대로라면 '부정과 금권'의 유혹에 언제든 노출될 소지가 있다. 단 24명에게 한국 축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

대의원의 표심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향했다. 정 회장이 결선투표에서 획득한 표는 15표였다. 15표로 관련종사자가 10만명 이상이며, 1년에 약 1000억원을 주무르는 대한축구협회의 수장이 됐다. 연맹의 규모나 현장의 목소리는 중요치 않다. 어떻게든 24명으로 이루어진 대의원의 마음만 얻으면 된다. 혼탁했던 선거판 때문에 벌써부터 검찰조사 얘기가 나오고 있다. '후보자 등록을 위한 추천서가 수억원에 거래됐다', '대의원 자제들의 취직 자리를 책임져주기로 약속한 후보가 있다' 등 선거 전부터 축구판에는 각종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이는 기형적인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대의원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론상으로는 축구협회 등록인구 전체가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게 된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등록인구 중 대표격인 대의원들이 축구협회장을 선출한다. 문제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서는 대의원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16명의 시·도 축구협회장(서울, 경기, 대전, 충북, 충남, 강원, 전북, 전남, 경남, 경북, 부산, 대구, 제주, 울산, 광주, 인천)과 8명의 산하 연맹 회장(초등, 중등, 고등, 대학, 실업, 풋살, 여자, 프로)이 한표씩 행사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지역축구와 산하연맹을 대표하는 얼굴들이지만 사실상 '명예직'에 가깝다. 지역과 산하 연맹 전체의 의견을 듣지도 못하고, 들을 생각도 없다. 당연히 축구계 전체의 여론을 수렴하기 어렵다. 후보의 정책이나 역량에 대한 검증도 반영되기 어렵다.

개인적 이해관계와 금권이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 정몽규 후보의 경우 현대가로 분류되는 4표를 확보한 채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조중연 전 회장의 지원을 받은 김석한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후보의 자질보다는, 관련단체가 얻을 수 있는 득실보다는 대의원과 후보의 이해관계에 따라 표심이 좌지우지됐다. 한 산하연맹의 관계자는 "우리 연맹의 입장에서는 다른 후보의 공약이 더욱 도움이 되지만, 회장님의 뜻이 다른 쪽으로 향해 있다"고 했다. 금권선거는 더욱 큰 문제다. 선거가 열릴 때마다 뒷돈, 특혜 제공 등 음성적인 선거운동에 대한 루머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저번 선거 때보다 표값이 10배 뛰었다"는 등의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처럼 혼탁한 선거 뒤에는 결과에 따라 반목과 대립이 이어진다. 축구계에 떠도는 '여권'과 '야권'이라는 말은 이같은 선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선거 후 한 후보의 관계자는 "배반, 배신이 이어지는 3류소설 같은 판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답은 역시 변화다. 얼마전 스포츠조선이 18명의 대의원과 51명의 전현직 지도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85%에 해당하는 59명이 현행 선거제도에 대한 변화를 외쳤다. 허정무 전 인천 감독의 말은 곱씹을만 하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는 과거 유신시대 때 장충체육관에서 한 선거와 비슷하다. 선진국 어디를 봐도 이런 제도는 없다. 24명의 대의원 중에서 축구인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후보들 중 아무도 현행 선거제도를 고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 모두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이어 "현행제도에서는 프로연맹과 초등연맹, 풋살연맹이 똑같이 한표다. 서울시협회와 제주시협회도 똑같이 한표씩 나눠 갖는다. 프로연맹과 풋살연맹의 인구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울과 제주의 등록인구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이에 대한 차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도협회와 산하연맹의 규모에 따라 표를 차등분배한다면 투표에 참가하는 대의원수는 자연스럽게 늘게 된다. 여기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선수협의회와 지도자협의회, 원로모임 등에도 투표권을 줄 필요가 있다. 이는 51명의 전현직 지도자들의 공통된 주장이기도 했다. '축구 최강국' 스페인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선거를 치른다. 각 지역별 축구협회장으로 이루어진 지역대표 20명, 클럽(84명), 선수(48명), 심판(14명), 지도자(14명) 등 각 부문 직능대표 160명으로 이루어진 180명의 대의원이 축구협회장을 뽑는다.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의 숫자가 많을수록 후보가 직접 접촉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금권선거에 대한 유혹도 사라지게 된다.

변화를 위한 칼은 정몽규 새 회장이 쥐고 있다. 기득권을 위해서는 당연히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재임기간 동안 24명만 잘 관리하면 재선이 되기도, 혹은 자신의 사람을 앉히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축구협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선거제도에 변화를 줘야한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축구계 분열의 뿌리인 선거제도의 변화부터 선행돼야 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