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10번째 구단 탄생이 마침내 가시화됐다.
10구단 창단 승인을 놓고 소통불능 상태에 빠졌던 한국 프로야구가 극적으로 출구를 찾았다.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이 꽉 막혔던 흐름을 돌려놓았다.
최근 프로야구는 10구단 창단 승인을 두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과 일부 반대 구단, 둘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했다. 선수협은 KBO 이사회가 10구단 창단을 승인하지 않으면 11일로 예정된 골든글러브 시상식 불참은 물론, 내년 팀 훈련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소집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KBO는 급하게 11일에 이사회를 열기로 했지만, 이 자리에서 10구단 창단 승인이 결정되지 않으면 프로야구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올시즌 관중 700만명 시대를 열며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 스포츠로서 위상을 재확인한 프로야구에 비상등이 들어온 것이다.
벼랑 끝 위기 상황에서 구 총재와 이 부회장이 해결사로 나섰다. 구 총재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협조를 요청하면서 상황이 급속히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프로야구 관계자는 "구 총재가 이 부회장을 찾아가 간곡하게 10구단 창단 승인 문제를 풀어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 부회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구 총재는 올스타전을 전후한 지난 여름에도 이 부회장과 접촉을 했으나 당시에는 이렇다할 답변을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널리 알려진대로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삼성 라이온즈와 연관된 직함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야구에 관심이 지대하다. 라이온즈 경기를 관전하고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종종 야구장을 찾는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계에서도 영향력이 크다. 구단주는 아니지만 다른 팀의 구단주, 오너들과 친분이 있고, 이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크다. 이는 곧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10구단 창단 문제에도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걸 의미한다.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지난 3일 야구인골프대회에서 "10구단 창단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고, 김 인 사장은 "삼성은 반대를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구 총재와 이 부회장이 만난 이후 삼성의 분위기가 변화된 것을 한눈에 감지할 수 있게 한 대목이다.
프로야구 9개 구단 대표와 구본능 KBO 총재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프로야구의 현안을 논의해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구이다. 매월 둘째주 화요일에 이사회를 개최해 왔는데, 이번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정대로라면 11일에 열어야 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과 겹쳐 스케줄을 잡는 게 어려워졌다. 더구나 10구단 창단 문제가 걸려 있어 개최 시기가 미묘했다.
물론, 이사회 개최가 중요한 게 아니라, 10구단 창단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KBO는 지난 여름 선수협이 올스타전 보이콧 카드로 10구단 창단 승인을 압박하자, 연내에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10구단 창단 반대파 구단과 선수협 사이에 낀 KBO는 운신의 폭이 좁았다.
그동안 10구단 창단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구단은 롯데였다. 9구단 NC 다이노스가 창원을 연고지로 창단할 때부터 반대했던 롯데는 10구단 창단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때 한화와 KIA가 10구단 창단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을 의식해 나서지 않았지만 내심 10구단 창단을 내켜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이들 구단들도 찬성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워낙 민감한 문제이다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 이전에는 반대 성향이었던 구단들이 지금은 다른 자세로 접근하고 있다. 11일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 승인을 낙관한다"고 했다. 그만큼 야구계 전체에 10구단 창단 승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 부회장의 입장 표명이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나서면서 이제 반대 구단은 롯데 하나만 남았다. 줄기차게 반대를 고수해온 롯데가 전체적인 흐름을 바꾸기는 어렵다.
KBO는 10구단 창단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프로야구 구단들의 협의체라는 한계 때문에 그동안 총재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반대 구단을 공격적으로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대 입장을 표명해온 구단의 주장은 구단 사장 수준이 아닌 구단주의 의견이라고 봐야 한다. 구단주나 모기업 최고위층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다. 구단 사장이 야구계의 정서, 분위기를 모기업 최고위층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 때문에 롯데처럼 모기업이 현실과 유리된 입장을 고수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