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에 맞춰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마친 김연아(22·고려대)는 활짝 웃었다.
사실 '김연아'라는 이름값에 비춰 본다면 만족할만한 연기는 아니었다. 그녀 답지 않은 실수가 이어졌다. 두 번의 점프에서 실수했다.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싱글 토루프-싱글 루프로 마무리했다. 이어진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는 넘어지고 말았다. 평소라면 고개를 숙였을 그녀다. 기대에 눌려 대단한 연기를 펼치고도 울었던 김연아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소를 지었다. 은반 위에서 다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행복함 때문이다.
김연아는 달라져 있었다. 그녀를 짓누르던 엄청난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진 모습이었다. 김연아는 복귀 후 오랜만에 강도높은 훈련을 하느라 힘들 법도 했지만 웃는 날이 더 많았다. 피겨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 김연아는 NRW트로피 대회 출국차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예전에 비해 마음이 한결 가볍다는 것이다. 처음 복귀를 결정했을때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여유롭게 했더니 잘됐다. 힘들어도 웃으면서 하는 것이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다. 결과가 중요하지만 많이 달라졌다. 무거운 마음이나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만큼 자신있게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20개월만의 복귀전이었지만, 긴장보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지난해 4월 열린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와 비교해보자. 김연아는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지만,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눈에 보였다. 중압감에 의욕도 떨어진 모습이었다. 결국 그녀는 두번째로 높은 시상대에 오르고서도 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김연아는 당시 "정확한 의미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줄줄 눈물이 났다. 힘든 시간을 보낸 뒤 오랜만에 시상대에 서 있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번 NRW트로피 대회에서 보여준 김연아의 모습은 '행복한 스케이터'였다.
김연아는 복귀 선언 후 의미있는 행보를 걸었다. 마지막으로 치른 아이스쇼에서는 시니어 무대 데뷔 시즌의 프로그램인 '록산느의 탱고'를 재연했다. 어린 시절의 은사인 신혜숙 류종현 코치와 다시 손을 맞잡았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였다. 김연아의 의도는 맞아떨어졌다. 사실 김연아는 기술적으로는 더이상 성장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선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피겨에 대한 즐거움을 되찾은 그녀는 개인 통산 4번째 200점대를 달성하며 화려하게 복귀전을 마무리했다. 완벽하게, 아니 더욱 성숙해져 돌아온 그녀가 우리를 더 얼마나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피겨여왕'은 그렇게 웃으며 돌아왔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