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매니저, 위닝일레븐 등 실제 선수들을 표현한 축구게임이 늘어나고 있다. 게임을 즐기던 팬들은 자연스레 선수들의 능력을 수치화해 평가하고 있다. 제주의 수비형 미드필더 오승범은 게임 상에선 구현하기 힘들다. 특별히 빠른 것도 아니고, 힘이 센 것도 아니다. 패싱이 탁월한 것도, 슈팅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주에선 없어서는 안될 선수다. '헌신'이라는 항목은 게임에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의 '믿을맨' 오승범(31)이 프로통산 300경기 출전 고지에 올랐다. 오승범은 25일 울산과의 K-리그 42라운드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하며 K-리그 통산 28번째 300경기 출전 선수로 기록됐다. 1999년에 데뷔한 후, 13년만의 일이다. 300경기는 꾸준함의 산물이다. 팀의 궂은일을 담당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해 팀에 헌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300경기 기록은 더 값지다. 오승범은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너무 좋다. 프로에 있으면서 부상없이 꾸준히 뛰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더 오래 경기에 나서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데뷔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오승범은 제주오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천안(현 성남)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쟁쟁한 팀원들에 밀려 리그에서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방황이 시작됐다. 오승범은 "아무것도 모르다보니 적응이 너무 힘들었다. 성남에 좋은 멤버들이 워낙 많아서 주전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다. 이때가 처음으로 축구하기 싫다고 느꼈던 순간이다"고 했다. 그 때 오승범의 손을 잡아준 것은 부모님과 지금의 아내 김희진씨다. 가족의 힘을 업은 오승범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입대해 광주상무에서 프로의 발판을 마련하고, 2005년 포항으로 이적하며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포항의 리그 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2008년 제주에서 영입제의가 왔다. 망설이지 않았다. 오승범은 제주 토박이다. 초중고를 모두 제주에서 나왔다. 가족들도 모두 제주에서 살고있다. 오랜 타향살이로 지쳐있을때 제주의 제안은 달콤했다.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뛰는 모습을 부모님께 자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단다. 오승범은 "예전에 경기를 할때면 1년에 한두번 정도 부모님이 관전을 하셨다. 이제는 홈경기는 모두 볼 수 있으셔서 참 좋아하신다"고 웃었다. 가족들 앞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철저한 몸관리가 몸에 뱄다. 오승범은 음식관리 뿐만 아니라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를 느끼면 바로 보강훈련을 한다. 박경훈 제주 감독도 "젊은 선수들에 귀감이 되는 선수"라며 엄지를 치켜올린다.
300경기 출장을 본인만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프로축구연맹은 300경기 이상 출장자에게 상금과 기념상패를 준다. 오승범은 상금을 기부했다. 제주 서포터스 몽생이 회장으로부터 집안형편이 어려운 회원이 큰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와 상의 후 도움을 주기위해 상금을 쾌척했다. 오승범은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팀에 드러나지 않는 '언성히어로(알려지지 않은 영웅)'다운 결정이었다. "큰 욕심없이 그라운드에 오래 있고 싶다"는 오승범은 이제 400, 500경기를 꿈꾼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