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삼성의 2012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규시즌 우승팀, 전력은 고스란히 보전됐고 충분한 휴식을 통해 에너지도 넘쳤다. 실제로 1, 2차전에서 나타난 '극강함'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2012 한국시리즈 우승은 삼성이다'는 문장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소외됐던 SK가 더 주목을 받고 있다. 2패의 열세를 딛고 다시 2승을 거두며 전적의 균형을 맞춘 저력, 그리고 '가을 타짜'들의 해결사 본능에 관심이 크게 쏠리기 때문이다.
전적은 2승2패. 두 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세는 SK쪽으로 조금은 더 쏠려있는 분위기다.
삼성이 이러한 분위기를 깨고, 다시 흐름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두말 할 나위없이 5차전 승리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해결사'다. '해결사'라는 표현에는 단순히 결승타를 치거나 좋은 타격을 보여주는 선수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바로 한 방으로 분위기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임팩트가 있는 선수여야 한다.
일단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이 있다. 워낙에 큰 경기에서 흐름을 바꾸는 한 방을 잘 쳐줬던 선수다. 마치 계획이라도 세워 놓은 듯 이승엽의 '큰 경기 영웅담 패턴'은 늘 비슷했다. 한국시리즈든, 아시안게임이든, 올림픽이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든. 일단 초중반까지는 내내 고생을 한다. 컨디션이 좋았던 때가 없었다. 늘 어딘가 아팠고, 타격 밸런스는 뒤죽박죽이었다. 헛스윙, 내야 플라이 등 이승엽과 어울리지 않는 스윙이 반복됐다.
당연히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승엽 본인도 무척이나 괴로워한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웃는 것은 이승엽이다. 항상 마지막 순간 결정적인 적시타나 홈런을 터트려 팀을 구해내며 최고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전형적인 '영웅담'의 플롯이다. 이런 서사 구조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이승엽은 1차전에서 선제 결승홈런을 터트리며 이름값을 했다. 그러나 4차전에서는 결정적인 주루플레이 실수로 추격기회를 날려버렸다. 위기에 몰린 '영웅'의 모습인 것이다. 이런 패턴이라면 이승엽이 절치부심해 5차전에서 맹타를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 후보로는 최형우가 있다. 2차전 승리에 방점을 찍는 만루홈런을 친 최형우는 비록 역전패로 끝이 났지만, 3차전에서도 초반 3점 홈런을 날려 뜨거운 타격감을 과시한 바 있다. 비록 한국시리즈 타율은 1할2푼5리로 저조하지만, 2홈런 8타점으로 임팩트있는 모습을 과시한 최형우다. 최형우 역시 수많은 마음고생을 이겨낸 인물이다. 이는 곧 위기의 순간에 그만큼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현재 삼성 중심타선에서는 4번 박석민이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타격감 상실로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형우는 새로운 4번 대체자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만약 5차전에 최형우가 4번으로 나선다면, 한껏 달아오른 클러치 능력이 제대로 발현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삼성의 '해결사 부재' 고민도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