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경기는 잠실구장에서 열린다. 양팀의 '잠실맨'은 누가 있을까.
2승2패로 동률이 된 한국시리즈, 5차전부터는 잠실로 무대를 옮긴다. 매번 '꼭 해야 하나?'라는 논란을 일으키는 '중립경기'다. 홈에서 전승을 한 삼성과 SK 모두 이제 홈 어드밴티지가 없다. 조건은 같아졌다. 두 팀 모두 원정팀과 같다.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비좁은 복도에 장비를 놓아야 한다. 마음 편히 뛸 수 있는 홈구장과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삼성은 지난해 잠실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좋은 기억이 있다. SK에게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앞선 채 잠실로 와 부담없이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적지보다 중립지역인 잠실에서 우승 헹가래를 친 게 오히려 다행이었을 정도. 게다가 지난 2005년과 2006년 모두 잠실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2005년엔 홈팀 두산을 상대로 3,4차전에서 모두 승리해 무패 우승을 달성했고, 2006년엔 잠실에서 한화에 1승1무로 우승 헹가래를 쳤다. 2005년 이후로는 잠실에서 열린 한국시리즈에서 패배가 없다.
SK는 잠실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2007년과 2008년 홈팀 두산을 잠실에서 짓밟았다. 패배 없이 3승씩 챙겼다. 잠실만 오면 기세등등했다. 2008년엔 적지인 잠실에서 우승을 확정짓기도 했다. 반면 2009년엔 잠실에서 울었다. 2연패 뒤 홈에서 2연승, 그리고 찾은 잠실에서 1승2패로 KIA에 무릎을 꿇었다. 7차전에서 먼저 승기를 잡았지만, 나지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지난해엔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1경기를 치러 졌다.
어쨌든 양팀 모두 잠실에 오면 "자신 있다"는 식의 할 말이 있다. 올시즌 성적은 어땠을까. 삼성은 13승6패, SK는 11승8패를 거뒀다. 두 팀 모두 좋았다.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은 3.48과 3.44로 거의 동일했다. 5차전 선발투수의 기록도 비슷하다. 삼성 윤성환은 2경기서 1승1패 평균자책점 4.63, SK 윤희상은 3경기서 1승1패 평균자책점 4.42를 기록했다. 모두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타선으로 가보자. 삼성 타선은 잠실구장에서 2할9푼6리 9홈런 88타점을, SK 타선은 타율 2할6푼5리 15홈런 73타점을 기록했다. 타격의 정확도나 점수를 뽑아내는 능력은 삼성이 나았고, 장타력은 SK가 앞섰다.
그렇다면 유독 잠실에서 힘을 낸 '잠실맨'들은 누가 있을까. 삼성은 '국민타자' 이승엽을 필두로 조동찬 김상수 정형식 등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승엽은 타율 3할4푼7리(75타수 26안타)를 기록했고,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냈다. 홈런은 1개에 불과했지만, 드넓은 잠실구장에서 타구를 빈 공간으로 보내는 물오른 타격 스킬을 자랑했다.
조동찬 김상수 정형식 등 발빠른 타자들의 활약도 반갑다. 조동찬은 3할9푼(41타수 16안타) 김상수는 3할4푼4리(64타수 22안타) 정형식은 3할4푼(53타수 18안타)의 고타율을 자랑했다. 김상수가 도루 4개를 성공시켰고, 조동찬과 정형식도 2도루씩을 올렸다. 발빠른 타자들이 출루해 활발한 베이스러닝을 보여준다면, 삼성은 충분히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수 있다. 다만 1번타자 배영섭이 타율 2할5푼4리로 평범한 성적을 남긴 게 조금 아쉽다.
SK는 어떨까, 최근 공수에서 별명답게 '짐승'같은 괴력을 과시하고 있는 김강민이 압도적이다. 타율 3할5푼5리(62타수 22안타)을 기록했다. 여기에 올시즌 기록한 홈런 5개 중 3개를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에서 날렸다. 3,4차전에서 분위기를 탄 김강민은 잠실에서 '키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재밌는 건 잠실에서 강했던 이승엽-김강민이 경북고 선후배 사이라는 점. 김강민은 이승엽의 경북고 6년 후배다.
김강민과 함께 잠실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낸 최 정의 활약도 반갑다. 잠실구장 타율은 3할1푼9리(69타수 22안타). 무엇보다 팀내에서 가장 많은 4개의 도루를 성공시켰기에 이번에도 활발한 '발야구'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SK 입장에서는 4차전에서 탈보트를 무너뜨린 홈런을 날리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2번타자 박재상이 타율 7푼7리로 부진했던 게 아쉽다.
물론 기록은 기록일 뿐이다. 지금껏 부진했던 이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원점으로 돌아간 한국시리즈, 남은 잠실 3경기에서 어느 팀이 웃을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