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천리다. 하지만 샴페인은 금물이다.'
한화가 괴물 에이스 류현진(25)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꿈의 빅리그 입성에 성공할 것인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장면을 가정하는 등 미국 진출이 확정된 것인양 들떠있다.
하지만 이제 문을 열었을 뿐이고, 아직 첫 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류현진이 앞으로 거쳐야 할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입찰제도)의 특성과 한화 구단의 우려를 살펴보면 냉철한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류현진의 미국행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변수가 단계적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일사천리로 결판날 수 있다
일단 류현진의 포스팅 시스템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한화 구단은 "이와 허락하기로 한 이상 질질 끌어봐야 팬들의 비판 목소리만 커질 것"이라며 11월 1일자로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포스팅을 신청하기로 했다. 이후 KBO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이 사실을 알리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KBO를 통해 류현진에 대한 신분조회를 거친 후 각 구단에 류현진을 공시한다. 미국과의 물리적인 거리때문에 공시까지 2∼3일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공시 이후 최대 8일이 더 필요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공시 후 4일 안에 구단들의 응찰액을 받아내 KBO에 통보하면 한화가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한이 추가 4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흘 안에 류현진의 거취가 조기에 결정날 수 있다. 우선 포스팅 금액(한화에 제시하는 이적료)부터 엇박자가 날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포스팅 시스템의 특성은 블라인드 데이트(상대방의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미팅을 하는 일종의 복불복 데이트)와 비슷하다. 한화 구단은 KBO로부터 미국측의 응찰액 가운데 최고 금액만 통보받는다. 어떤 팀이 제시했는지는 철저하게 비밀이다. 구단은 금액만 놓고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때 과거 이상훈 임창용의 사례처럼 기대 이하의 금액이 나오면 말할 것도 없이 미국행은 무산이다. 구단은 어느 정도 거액의 응찰액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지만 류현진과 약속한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느냐가 문제다. 구단과 류현진이 사전 합의로 설정한 가이드라인에 근접하지 못하면 류현진도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건부' 승인인 것이다. 구단은 "류현진의 자존심은 강하다. 다르빗슈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안한다"고 했다. 비밀에 붙여진 가이드라인이 만만치 않음을 예상하게 한다.
▶장난치는 거래에 낚일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최고 응찰액이 수용된다면 1차 관문은 통과한 셈이다. 이후 류현진은 그제서야 최고 응찰액을 제시한 구단의 실체를 알수 있게 되고 30일간 독점 계약 협상을 벌이게 된다. 포스팅 시스템은 '원샷 원킬'이기 때문에 여기서 협상이 무산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포스팅 기간이 11월 1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로 돼있다고 해서 3월까지 1번 더 실시하는 게 아니다. 4개월 안에 언젠가 1번만 포스팅을 신청하라는 소리다. 류현진과 미국 구단의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면 빠르면 11월말 정도면 입단계약이 성사될 수 있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류현진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보통 포스팅 시스템에서의 선수영입 예산은 포스팅 금액과 선수의 순수연봉을 합쳐서 책정한다. 포스팅 금액이 커질수록 선수 연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작 포스팅 금액은 만족스러운데 선수의 순수 연봉에서 무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화 구단은 "메이저리그 하위급 연봉을 제시하면 류현진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면서 "과거에 일본에서도 연봉에서 맞지 않아 무산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총 1910만달러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받았지만 정작 연봉 협상에서는 실패한 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올시즌 미국에 진출한 이와쿠마(시애틀)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여기에 이른바 '장난 거래'도 조심해야 한다. 한화 구단이 파악한 정보로는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메이저리그 구단끼리 경쟁이 붙어 경쟁팀의 전력강화를 막기 위해 '내가 못먹는 감 찔러나보자'는 심산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다. 우선 포스팅 금액을 시장가격보다 높게 제시해 독점 협상권을 얻으면 경쟁팀들은 자동 탈락되는 규칙을 역이용한 것이다. 경쟁팀 탈락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류현진과의 독점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면 말도 안되는 연봉을 제시하며 '할테면 하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 버틸 수 있다. 결국 류현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최만식 기자 kildongh@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