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책없이 막강한 마운드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2012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한 삼성의 투수진 운용을 보면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너무나 단단하고, 빈틈이 없다. 무엇보다 단기전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탄력적 보직 변동이 눈에 확 들어온다. 변신이 자유자재로 이뤄지니 어떻게보면 '트랜스포머 투수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준과 물량, 도무지 단점이 없다
보는 이는 매우 흥미로운 투수진 운용이지만, 당하는 SK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수 밖에 없다. 도무지 어디서 어떤 부분을 파고들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규시즌이라면 삼성에는 일종의 '필승 공식'이라는 게 존재했다. 거의 6명에 달하는 선발 중 누군가가 최소 5회, 길면 7회 정도를 던지면서 리드를 잡아준다. 올해 삼성 선발진의 평균 1경기 소화 이닝은 5⅔이닝 정도였다. 일단 이것으로 공식 1단계는 완성이다.
다음 2차 술식은 필승 셋업맨의 투입이다. 경기 상황과 상대 타자에 따라 몇 가지의 변형이 존재하는데, 보통 우완 정통파 안지만(28홀드)과 우완 사이드암스로 권오준(10홀드), 좌완 정통파 권 혁(18홀드)을 중심으로 투입하면서 정현욱과 심창민을 적절히 기용하는 형태다.
여기까지 별 탈없이 진행됐는데, 스코어 차이가 얼마되지 않거나 상대의 반격 기미가 보인다. 그렇다면 삼성의 마지막 선택은 언제나 하나로 귀결된다. '끝판 대장' 오승환의 투입. 그가 마운드에 올라선 순간, 게임은 사실상 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이러한 '필승 공식'은 어김없이 가동되고 있다. 그런데 정규시즌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2차 술식, 즉 중간계투진의 운용 내용이다. 정규시즌에도 뛰어났지만,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그 양과 질이 월등히 업그레이드 됐다. 올해 정규시즌에서 삼성 불펜진의 평균자책점은 2.64였다. 유일한 2점대 평균자책점이다.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도 1.10으로 가장 낮았다.
그런데 한국시리즈 1, 2차전을 통해 나타난 삼성 불펜진의 평균자책점은 '0'이다. 6⅔이닝 동안 자책점을 1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비록 2차전에서 정현욱이 2실점을 했으나 수비 실책에 기인한 것으로 자책점은 아니었다. 막강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단계다.
▶트랜스포머 불펜, 공략포인트는 있나
이렇듯 삼성 마운드, 특히 불펜이 막강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한국시리즈에 대비해 투수진이 완벽에 가까운 몸상태를 만든 것이다. 정규시즌 종료 후 2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 한국시리즈를 대비하면서 투수진은 정규시즌을 통해 지친 어깨를 풀어줄 수 있었다. 저마다 필요한 치료를 했고,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관찰·분석하며 공략 계획을 완벽에 가깝게 세워뒀다.
그러다보니 SK를 상대로도 전혀 당황하거나 긴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롯데가 올라왔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절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병법 속의 진리를 삼성 투수진이 완전히 체득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트랜스포메이션', 즉 변신에 있다. 한정된 투수자원을 가지고 짧은 기간에 치르는 단기전에서는 목적에 맞춰 보직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것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직 이동의 전제조건은 일단 기량이 합당해야 하고, 또 자유롭게 이동시켜도 다른 파트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삼성은 이게 된다. 그래서 정규시즌 11승 투수 고든과 6승 투수이자 지난해 팀내 최다승을 거둔 차우찬을 2차전에서 서슴없이 '1이닝 셋업맨'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삼성은 이미 6-1로 승기가 굳어진 7회부터 고든-정현욱-차우찬을 딱 1이닝씩 투입했다. 얄미우리만치 철저한 승리굳히기였다.
특히 고든의 빠른 투입과 차우찬의 마무리는 삼성의 '트랜스포머 마운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덩달아 SK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저길 어떻게 뚫지?'와 같은 공포감을 심어주는 기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운용이 계속된다면 SK의 역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