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좀처럼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는 해외 진출 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위기에 몰렸다.
김연경은 22일 오후 3시 정도까지는 반드시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받아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 김연경은 7월 6일 터키 페네르바체와 계약을 맺었다. 페네르바체의 ITC 승인은 7월 16일에 떨어졌다. 그러나 국내 상황이 어지러웠다. 로컬룰을 중시하던 대한배구협회의 입장은 완강했다. ITC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런던올림픽 이후 김연경은 분쟁이 잘 해결되리라 믿고 팀에서 훈련을 진행했지만, 10월 15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클럽 월드챔피언십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대회는 유럽배구연맹(CEV)컵과 터키 정규리그다. 페네르바체의 인내심은 점점 고갈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세계 최고로 평가받은 김연경과 재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럽 톱 선수만 받을 수 있다는 연봉(15억원) 차감 또는 급기야 계약 파기를 당할 수 있다.
아직 ITC 발급을 위한 희망의 불빛은 존재한다. 22일 터키 협회장, 페네르바체 관계자들과 국제배구연맹(FIVB) 관계자들이 독일 뮌헨에서 만난다. 국내에서도 김연경의 지원군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이다. 이들은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김연경 사태'를 해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22일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 관계자가 함께 모여 해결 방안을 논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김연경도 마지막 힘을 다해 FIVB 설득에 나선다. 마지막 소명 서류들을 FIVB에 전달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소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CEV컵은 물론 정규리그도 시즌 초반 뛰지 못하게 된다면 페네르바체에서도 김연경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작성될 경우 김연경은 자칫 1년간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한다. 김연경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만일 이 상황이 연출된다면 김연경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뛰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권리를 되찾을 싸움을 펼칠 전망이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와 법적 소송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김연경 사태'는 일찍 마무리될 수 있었다. 대한배구협회의 일방적인 행정만 없었다면 말이다. 중립을 지켜야 할 협회가 규정을 지킨다는 이유로 흥국생명 측에만 섰다. 그러나 이 규정은 로컬룰일 뿐 국제 무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프로화가 진행된 축구계와 비교해보자. 축구에선 임의탈퇴로 공시된 선수는 곧바로 자유계약(FA) 선수가 된다. 이 선수는 K-리그에서만 뛰지 못할 뿐 모든 해외리그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원소속구단의 동의가 필요없다는 얘기다. 배구에는 로컬룰이 있지만, 선수 권리 보호 차원에서 같은 이치가 적용돼야 함이 맞다.
특히 협회의 안일한 입장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7월 16일 협회의 ITC 승인 불허 당시 한국 측의 작성란에는 협회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표2 참조> 즉, 협회의 빠른 판단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협회는 구시대적인 규정만 고집했다. 특히 미국 애너하임에서 협회는 김연경의 신분이 FA라는 FIVB 관계자의 얘기를 들었다. 분명 문서화 되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러나 문서화는 커녕 비공개를 담보로 한 김연경-흥국생명-협회의 합의서를 FIVB에 전달했다. 그러나 합의서를 근거로 FIVB의 결정이 내려진 뒤 ITC 발급란에는 흥국생명의 승인란이 생기고 말았다.<표3 참조>
협회의 권력 앞에서 선수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전혀 입장이 FIVB에 전달되지 않았다. 김연경 사태로 인해 국내 배구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규정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하는 협회의 주장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좀 더 공평하고 원활한 중재가 있었다면 이 문제가 확대되지 않을 수 있었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까지 나선 상황에서 협회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