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의 오랜 믿음 중엔 '좌우법칙'이 있다. 좌타자엔 왼손 투수, 우타자엔 오른손 투수가 효과적이라는 통념이다.
오른손 타자가 혹은 왼손 타자로 편중돼 있는 팀은 사이드암스로 투수, 또는 왼손 투수에 약점을 보일 수도 있다. 또 마운드에도 오른손 투수만 많으면 왼손타자 상대가 힘들고 왼손 투수만 많으면 오른손 타자가 많은 팀과는 어려운 경기를 할 수 있다. 따라서 타선에 2∼3명의 왼손타자가 들어가는게 좋고, 마운드에도 역시 오른손 투수와 왼손투수, 사이드암 투수가 적절히 섞여 있는 게 경기 운영에 좋다는 게 기본 통설이다.
삼성이 좌우 균형이 좋은 팀 중 하나다. 타선에 박한이 이승엽 최형우 등 좋은 왼손타자가 있고, 박석민 배영섭 진갑용 등 오른손 타자도 펀치력과 정확성을 갖췄다. 마운드 역시 마찬가지다. 선발진엔 탈보트, 고든, 윤성환 등 오른손과 다승왕 장원삼과 차우찬 등 왼손이 골고루 있고, 불펜진에도 오승환 안지만 정현욱 등 오른손 투수에 왼손 권 혁과 사이드암 권오준이 골고루 배치돼 있다.
롯데 불펜도 매우 이상적인 구성이다. 오른손 파이어볼러 최대성과 기교파 김사율, 사이드암스로 김성배와 언더핸드 정대현, 왼손 기교파 이명우와 왼손 강속구 강영식 등 같은 스타일이 한명도 없다.
그러나 아무리 백화점식으로 구색을 잘 맞춘다 해도 기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다. 왼손투수만 득시글거린다 해도, 혹은 오른손 타자 일색이라 해도 그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좌우법칙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SK가 바로 그런 팀이고,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그 본색을 여실히 보여줬다.
투수와 타자 모두 균형적으로 볼 땐 맞지 않지만 실력으로 좌우 균형이 맞는 팀보다 더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SK 마운드를 보면 11명의 투수 중 왼손은 김광현 정우람 박희수 뿐이다. 나머지 8명은 모두 오른손 정통파다. 사이드암스로 투수조차 없다. 이 정도면 불균형이 꽤 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SK는 16일 플레이오프 1차전서 4명의 투수를 냈다. 선발 김광현에 이어 오른손 엄정욱-왼손 박희수-왼손 정우람이 바통을 이어받아 경기를 마무리했다. 롯데는 오른손 타자가 많은 대표적인 팀이다. 왼손타자는 손아섭과 박종윤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오른손 타자다. 즉, 좌우법칙에 따르면 왼손투수들에겐 승부가 쉬운 팀이 아니다. 그런데 왼손 투수 3명이 나와 무려 8이닝을 막아냈다.
보통 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땐 박희수와 정우람이 연속해서 나오는 것보다는 박희수와 정우람 사이에 오른손 투수가 끼어 타자의 시선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SK는 그런 속설보다는 실력으로 밀어붙였다. 왼손 에이스 김광현에 이어 7회 오른손 셋업맨 엄정욱을 냈고, 상위타선이 나오는 8회 가장 믿는 박희수를 올렸다. 보통 왼손 투수는 왼손타자에 맞춰 올리지만 이조차도 SK는 따르지 않았다. 박희수는 오른손 타자인 김주찬과 정 훈을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왼손타자 손아섭을 1루수앞 땅볼로 처리하며 8회를 마쳤다. 정우람도 오른손 타자 3명을 삼자범퇴로 막아 경기를 마무리했다.
야구계 최고의 불문율은 결국 좌우법칙이 아니라, 선수의 능력이란 걸 실증한 SK 마운드였다. 인천=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