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전에서는 첫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연한 이야기다. 올해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를 포함해 역대 79번의 포스트시즌 승부에서 1차전 승리팀이 최종 시리즈를 가져간 것은 63번으로 비율로는 79.7%에 이른다. 이 비율은 준플레이오프 86.4%, 플레이오프 75.0%, 한국시리즈 79.3%다. 예를 들어 5전3선승제의 시리즈에서 1차전을 이긴 팀이 시리즈를 가져갈 확률은 통계학적 방법으로 계산하면 68.8%이다. 실제 포스트시즌에서 일어난 확률이 이보다 10.5%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이것은 결국 1차전 승리팀에게는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승리 요소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사기가 올랐다거나 상대의 기가 꺾였다는 사실이 '10.5%포인트'를 설명해주는 요소들이 될 것이다. 기선제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감독들은 포스트시즌 1차전 선발로 웬만하면 에이스를 기용한다. 에이스란 시즌 내내 1선발로 팀내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투수를 말한다. 하지만 꼭 에이스를 투입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감독의 성향에 따라 다른 투수가 1차전 선발로 나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규시즌 개막전에서는 구단이 정해놓은 마케팅 방향에 따라 선발투수가 달라질 수 있는데, 보통 포스트시즌에서는 감독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니퍼트를 1차전 선발로 내세웠다. 한 달 전부터 니퍼트를 준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로 박아놓고 로테이션을 운영했다. 성적만을 놓고 보면 노경은도 1차전 선발로 손색없었다. 특히 후반기 들어서는 노경은이 에이스로 활약했다. 최종 페넌트레이스 성적을 놓고 보더라도 12승에 평균자책점 2.53으로 두 부문 팀내 1위를 차지한 노경은이 1차전 선발 가능성이 높았다. 시즌 막판 컨디션도 노경은이 더 좋아 보였다. 그러나 김진욱 감독은 일찌감치 니퍼트를 1차전 선발로 결정했다. 에이스의 자존심과 위상을 인정한 것이다. 니퍼트는 지난해부터 두산의 1선발로 활약했다. 다른 선발투수들도 기량과 스타일에서 니퍼트를 1선발로 인정한다. 노경은이 성적과 컨디션은 더 좋았지만, 에이스의 풍모는 니퍼트를 따를 수가 없다는게 공통된 평가였다. 포스트시즌과 같은 큰 경기에서는 1선발 경험이 많은 투수가 나서야 한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롯데는 달랐다.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송승준을 1차전 선발로 선택했다. 정규시즌서 에이스 역할을 한 투수는 유먼이었다. 유먼은 13승에 평균자책점 2.55로 두 부문 팀내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양승호 감독은 고심 끝에 유먼이 아닌 송승준을 1차전, 유먼을 2차전 선발로 내정했다. 송승준은 정규시즌서 7승11패, 평균자책점 3.31을 올렸다. 다소 의외의 결정인 듯보였다. 그러나 양 감독은 당시 컨디션을 중요하게 여겼다. 유먼은 시즌 막판 부상에 개인적인 일로 미국을 다녀오느라 2주 넘게 실전 투구를 하지 못했다. 반면 송승준은 정규시즌 마지막 2경기서 각각 6이닝 이상 던지며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한편으로는 양 감독이 올시즌 개막전 선발로도 나섰던 송승준을 내심 에이스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SK의 경우는 어떨까. 이만수 감독은 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로 김광현을 결정했다. 이 감독은 15일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포스트시즌 하면 김광현이기 때문에 성 준 코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탁했다"고 밝혔다. 물론 김광현은 오랫동안 SK의 에이스로 활약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부상과 부진 때문에 로테이션에 늦게 합류했고 성적도 8승5패, 평균자책점 4.30에 그쳤다. 정규시즌 마지막 2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지만, 포스트시즌 1선발 후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풀타임 선발로 뛰며 10승에 평균자책점 3.36을 올린 윤희상이나 외국인 투수 마리오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었다. 이 감독은 김광현의 포스트시즌 경험을 높이 산 것이다. 김광현은 지난 2007년 한국시리즈부터 포스트시즌 통산 10경기에 등판해 2승3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49를 기록했다. 김광현은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서 그해 22승을 올린 리오스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투수가 된 바 있고, 2010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서는 마지막 이닝까지 책임지며 세이브를 따낸 경험이 있다.
감독마다 포스트시즌 첫 경기 선발 결정에 있어 다른 원칙과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포스트시즌 첫 관문을 통과한 뒤 다음 시리즈에서는 1차전 선발을 정하는데 있어 로테이션 순서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