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가 엇갈린 양의지와 용덕한, 두산에게 이번 준플레이오프 패배는 더욱 뼈아팠다.
이번 준플레이오프는 '친정팀에 비수 꽂는' 시리즈로 요약됐다. 롯데에선 시즌 중 트레이드된 포수 용덕한과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한 중간계투 김성배의 맹활약이 있었고, 두산은 과거 롯데에서 이적한 최준석의 홈런으로 3차전 승리를 가져갔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띈 이는 역시 용덕한이다. '포수는 쉽게 트레이드 하는 게 아니다'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수에서 두산을 강하게 압박했다. 두산 입장에선 정말 가슴 아픈 시리즈였다. 게다가 용덕한을 트레이드시킨 결정적 이유였던, 주전포수 양의지는 존재감 조차 보이지 못했다.
▶두산, 30대 용덕한 대신 젊은 포수 육성을 선택하다
양의지는 이번 시리즈에서 15타수 1안타의 빈타에 그쳤다. 타율은 고작 6푼7리. 1차전에서 단타로 1타점을 기록한 뒤엔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1차전 연장 10회 선두타자 2루타로 결승점의 발판을 놓고, 2차전에서 9회 결승 솔로홈런을 날린 용덕한과는 극명한 대비를 보였다. 롯데는 용덕한 덕에 주전포수 강민호의 공백을 느끼지 않았다.
시즌 초반으로 돌아가 보자. 둘의 처지는 완전히 반대였다. 양의지는 올해도 주전포수였다. 2010년 신인왕을 차지한 이후 두산의 안방마님은 공격력이 좋은 양의지로 굳어졌다. 반면 만년 백업포수 용덕한은 개막 엔트리에 들었으나 3경기 출전에 그친 뒤 4월16일 2군으로 내려갔다. 주전 마스크를 쓴 건 단 1경기에 불과했다.
두산은 대신 최재훈이라는 젊은 포수를 키우기 시작했다. 2군에는 박세혁이라는 걸출한 신예도 있었다. 서른을 넘겨버린 용덕한은 점점 잊혀져 갔다.
그리고 급기야 트레이드 카드로 전락했다. 백업포수가 급해진 롯데의 트레이드 요청이 오자 6월17일 베테랑 포수 유망주 투수 김명성과 맞트레이드를 해버렸다. 아무리 미래를 내다 본 트레이드라지만, 두산이 좋은 포수 한 명을 거저 넘겨준 셈이었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그대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용덕한이 롯데에 가서 잘 한 건 선수 본인을 위해서도 매우 잘 된 일이다. 사실 '포수 왕국' 두산은 수년 전부터 포수난에 허덕이는 팀에 '공급자' 역할을 해왔다. 탁월한 육성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프로야구의 선순환을 위해서도 선수 육성과 적극적인 트레이드는 당연히 바람직한 일이다.
▶경쟁자 사라진 양의지, 의지도 사라졌다
하지만 문제는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의지'가 사라진 주전포수였다. 양의지는 부동의 주전포수였다. 가끔씩 체력 안배를 위해 최재훈이 마스크를 쓰긴 했어도 중요한 경기에선 무조건 양의지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전 마스크는 당연히 양의지의 것이었다. 최재훈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는 엄청난 독이 됐다. '위협 세력'이 사라진 양의지에게 중고 신인왕을 차지했던 2010년의 투지는 보이지 않았다. 타석에선 무기력한 스윙으로 일관했다. 어이없는 볼에 헛스윙하고도 억울해하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터벅터벅 덕아웃으로 걸어 들어갔다. 더이상 눈빛이 살아있던 유망주 양의지가 아니었다.
2010년 양의지의 모습은 달랐다. 그해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양의지와 용덕한은 똑같이 5경기 10타석 씩을 소화했다. 정확히 절반을 나눠 출전했다. 양의지가 페넌트레이스에서 주전으로 도약했다곤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두번째 옵션으로만 여겨졌던 용덕한은 9타수 6안타 4타점의 맹타를 휘두르고 준플레이오프 MVP에 올랐다.
하지만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선 양의지가 웃었다. 시리즈 도중 다시 주전마스크를 꿰찼고 18타수 6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2타수 1안타에 그친 용덕한을 압도했다. 당시만 해도 둘의 경쟁이 주는 효과는 컸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됐고,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2년이 지나고, 지난 1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은 두산의 패배로 허무하게 끝났다. 포스트시즌 역사상 두번째 끝내기 실책의 주인공은 양의지였다.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한다. 양의지는 타석에서도, 수비에서도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2013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 양의지로서는 군 복무를 마치고 한창 주전경쟁을 하던 2010년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