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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 한계' LG, 박명환과 재계약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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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달했다. LG가 박명환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LG 구단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LG는 최근 박명환을 비롯해 외야수 손인호, 투수 이대환, 포수 심광호 등에게 시즌이 끝난 뒤 더이상 재계약이 힘들다는 의사를 전했다.

특히 한국프로야구 22번째 통산 100승 투수인 박명환의 경우, 본인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예정이다. 만약 선수 생활을 계속 하겠다는 의사가 있다면, 11월 25일까지 제출하는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돼 자연스레 타팀과 계약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시즌 종료 후 제9구단 NC에 보호선수 20인 외 1명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웨이버 공시나 임의탈퇴 등 신분 변경이 불가능한 상태지만, 대개 구단은 9월 말부터 선수단 정리에 나선다.

선수 본인에게 일찌감치 기회를 주는 것이다. 타팀으로 이적을 꾀하거나, 지도자 혹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일종의 배려다. LG 역시 퓨처스리그(2군) 시즌을 마친 지난 2일 재계약 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통산 102승90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3.78. 96년 두산의 전신인 OB에서 데뷔한 박명환의 프로 통산 성적이다. 프로 3년차였던 98년 14승을 올리며 두각을 드러낸 박명환은 99년 시범경기 도중 처음 어깨를 다쳤다.

팔꿈치와 달리 어깨 부상의 경우 수술 후 재기가 어렵기에 그는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다. 박명환의 이 선택은 2000년대 초중반 그를 에이스로 만들었지만, 이후 '먹튀'라는 오명을 듣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박명환은 팀의 간판이 두산으로 바뀐 99년과 2000년 2년 동안 13경기에 나서는데 그쳤다. 어깨에 걸린 부하는 결국 팔꿈치 부상까지 야기했다. 하지만 2001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8승5패 7세이브 3홀드를 기록하며 부활의 기지개를 폈고, 2002년(14승) 2004년(12승) 2005년(11승) 세자릿수 승수를 올리며 두산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2006시즌 뒤 LG는 잠실 라이벌인 두산에서 박명환을 FA(자유계약선수)로 영입했다. 2002년 이후 초대받지 못한 가을잔치를 위해, 확실한 선발투수 박명환을 영입한 것이다. 계약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박명환은 당시 투수 FA 최고액인 4년 40억원(계약근 18억원, 연봉 5억원, 인센티브 2억원)을 받았다. '대박'을 넘어 '초대박'이었다.

4강 청부사로 여겨졌던 박명환은 이적 첫 해 10승6패 평균자책점 3.19를 기록한 뒤론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고질이던 어깨 통증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2008년 6월 오른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박명환은 99년 처음 어깨 통증을 느낀 뒤로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경기 전 2시간이나 어깨 강화훈련을 한 뒤 진통제를 맞고 마운드에 올랐다. 많은 휴식이 필요해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는 일도 많았고, 심지어 등판 하루이틀 전 소화하는 불펜피칭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다.

결국 프로 초창기부터 제대로 잡지 못한 어깨 통증이 박명환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재활에 매달린 2년간 1군 등판은 고작 9경기. 2010시즌에는 성공적으로 복귀하나 싶었지만, 고작 4승(6패)을 올린 뒤 시즌 막판 어깨 통증이 도졌다.

1군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박명환은 2군서 각각 4경기, 5경기 등판하는데 그쳤다. 일반적이라면 첫 FA 후 4년이 지난 2010년 말 FA자격을 재취득할 수 있었지만, 경기수를 채우지 못한 박명환은 일반 재계약 대상자가 됐다. 그리고 5억원의 연봉은 5000만원이 됐다. 90%라는 역대 최고 삭감률. 4억5000만원 역시 역대 최고 삭감액이었다.

올해 역시 재기를 노리다 조용히 사라졌다. 비시즌 때 의욕적으로 재활 및 보강훈련에 매달렸지만, 스프링캠프 참가가 달린 체력테스트에 허리 통증을 이유로 갑작스레 불참했다. 5월부터 실전 등판에 나섰지만, 두 차례 등판하면 한 달 가까이 쉬는 패턴이 이어졌다. 결국 7월3일 경찰청과의 경기에서 4이닝 5실점을 기록한 뒤론 재활군에만 머물렀다.

올시즌 박명환을 지켜본 노찬엽 2군 감독은 "박명환을 믿었다. 그런데 또 아프다는데 어쩌나. 쉬고 나니 최근엔 또 괜찮다고 하더라"며 "박명환 이대진 등이 동시에 빠져나갈 땐 마치 전염병 같았다"고 말했다.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는 어깨 상태도 문제였지만, 수년 간 같은 패턴을 반복해 온 박명환을 바라보는 LG의 인내심 역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150㎞에 이르는 강속구에 140㎞대 고속 슬라이더. 박명환의 전성기 시절은 화려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참고 던지다 망가진 어깨가 있었다. 또다른 통산 100승 투수 한 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