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될 경우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포지션은 선발투수다.
보통 '어깨가 식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오랫동안 피칭을 멈춘 뒤 다시 던지려면 컨디션 유지를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12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LG전은 우천으로 46분이나 경기가 중단됐다. 0-0이던 3회초 LG 공격 때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경기 중단이 선언됐다. 하지만 비는 30분후 그쳤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운동장 정리를 거쳐 3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LG 1번 오지환 타석부터 경기가 다시 진행됐다. 이날 선발투수는 삼성 배영수, LG 주키치였다. 경기 중단 직전까지 투구수는 배영수가 34개, 주키치가 21개였다.
46분간의 공백을 그래도 잘 견뎌낸 쪽은 배영수였다. 배영수는 5⅔이닝 동안 8안타 3실점(2자책점)의 역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됐다. 반면 주키치는 7이닝 동안 안타 8개와 볼넷 4개를 내주면서 7실점(5자책점), 패전투수가 됐다. 배영수보다 여건이 더 좋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주키치는 팀이 3회초 공격을 진행중인 상황에서 경기가 끊어졌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배영수보다 길었다. 게다가 후반기 들어 주키치는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내며 이닝 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 지난 2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5이닝 5실점으로 패전을 안았고, 7일 잠실 롯데전에서는 5⅓이닝 5실점으로 역시 제 몫을 하지 못했다.
배영수는 3회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오지환을 좌익수플라이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주키치는 3회말 마운드에 오르더니 제구력 불안을 드러내며 연속으로 출루를 허용했다. 선두 조동찬을 좌전안타로 내보낸 뒤 설상가상으로 김상수의 번트 타구를 포수 윤요섭이 1루에 악송구하는 바람에 무사 1,2루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계속된 만루에서 이승엽에게 몸쪽으로 던진 느린 슬라이더를 통타당해 2타점 2루타를 내주면서 실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4회말에는 9명의 타자를 상대로 4안타와 2볼넷을 허용하며 추가로 4점을 더줬다. 한꺼번에 대량실점을 했다는 것은 결국 경기가 중단된 시간 동안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주키치는 5~7회까지 3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으니 우천 중단으로 인한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배영수도 컨디션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4회 1점을 내준 배영수는 6회 1사후 연속 3안타를 내준데 이어 볼넷과 적시타를 또다시 허용하며 2점을 추가로 내줬다. 하지만 주키치에 비해 제구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LG 타자들을 요리했다. 삼성 벤치는 7-3으로 앞선 6회초 2사 만루서 배영수를 내리고 왼손 권 혁으로 마운드를 교체했다. 권 혁은 LG 대타 최동수를 2루수 땅볼로 잡아내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삼성으로서는 투수 교체도 적절하게 이뤄진 셈이었다. 대구=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