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살 떨리는 투구 대신, 믿음과 신뢰를 보여드려야죠."
LG 김광삼은 어느덧 프로 14년차 시즌을 맞았다. 팀에서도 고참급 선수로 투수조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시즌이 한창이던 지난달 9일 목동 넥센전 등판 이후 한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당시 목동 경기에서 갑자기 눈병에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에게 전염 우려가 있었기에 '격리' 차원에서 잠시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좀처럼 1군의 부름은 없었다. 김광삼 자리에 대신 들어갔던 2년차 신예 임정우가 기대를 모으게 하는 피칭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던 2군 생활은 점점 길어져 갔다.
당시 심정을 묻자 김광삼은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원망스러웠다"고 답했다. 어떻게 눈병에 걸렸는지는 몰랐지만, 그러한 상황 역시 자신이 만든 것이기에 자책감이 들었다고. 하지만 힘든 건 모두 개인적인 일이었다. 김광삼은 "나한테 기회가 안 오는 건 팀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부분에 대해 코칭스태프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없었다"고 했다.
마지막 등판 후 정확히 한 달 만에 기회가 왔다. 9일 잠실 두산전. 모처럼 홈팬들 앞에 선 그는 7이닝 2실점(1자책)으로 호투했고, 타선의 득점 지원에 승리투수의 영광도 안았다. 시즌 3승(2패)째.
김광삼은 경기 후 전날 게임이 우천취소되면서 2100일만의 선발등판이 무산된 신재웅 얘기부터 꺼냈다. "재웅이가 오랜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데 비로 연기되면서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고참으로서, 같은 투수로서 안타까웠다. 재웅이 몫까지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긴장감을 줬다"고 했다.
이처럼 그는 언제나 동료 투수들부터 챙긴다. 경기 도중 올시즌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젊은 투수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모습이 중계카메라에 잡히는 일이 다반사다. 본인은 투수조장으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항상 말한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오랜 2군행은 견디기 어려웠을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김광삼은 "코칭스태프에게 신뢰감을 주는 건 우리의 몫이다. 자리를 차지한다는 게 강한 압박이 될 수도 있지만, 선수가 노력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그는 "그동안 (보는 사람이) 살 떨리는 투구를 해왔다. 하지만 이젠 믿음을 주고 여유있게 공을 던지고 싶다"며 "한 번 못 던지면 바뀐다는 게 나한테 적용되지 않도록 2군에서 힘을 만들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한달여의 시간 동안 절박함이 더 커진 모습이었다.
김광삼은 언제나 "아직도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런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 바로 프로 첫 10승이다. 투수에서 타자로, 다시 투수로 변신하면서 '트랜스포머'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부상과 재활로 오랜 시간을 버리면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공은 한창 때보다 나약해졌지만, 강인해진 정신력으로 10승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겨울 김광삼은 '데뷔 첫 두자릿수 승수'에 '4강 진출'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더했다. 모두가 최하위 후보로 꼽았던 팀은 9일까지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어느 정도는 목표치를 향해 순항중이다.
김광삼 개인 목표인 프로 첫 10승을 달성한다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난 언제나 절박했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