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아자아자 파이팅!"
5월 30일 인천 인하대 체육관. 우렁찬 기합소리가 울려퍼졌다. 때이른 더위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선수들은 뛰고 또 뛰었다. 인하대 체육관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들. 바로 '주인없는' 프로배구단 드림식스 선수단이었다.
▶주인없는 배구단
드림식스의 원래 이름은 우리캐피탈이었다. 대우자동차판매의 자회사인 우리캐피탈이 배구단을 운영했다. 대우자동차판매는 지난해부터 운영난을 겪었다. 지난해 6월 전북은행에 우리캐피탈을 팔기로 했다. 전북은행은 우리캐피탈 인수에 993억원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었다. 문제는 배구단이었다. 새 주인 전북은행은 배구단 운영에 뜻이 없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배구단의 홍보효과를 들어 설득했다. 하지만 전북은행은 요지부동이었다. 배구단 운영에는 1년에 30억원 남짓 든다. KOVO가 발표한 남자 배구 평균 홍보효과는 팀당 평균 300억원이다. 10배 장사의 기회를 걷어찬 셈이다.
드림식스는 당장 선수들 월급도 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해체가 불가피했다. 7월 KOVO는 이사회를 열고 드림식스를 KOVO 관리구단으로 지정했다. KOVO가 선수들 월급 및 운영 자금을 대기로 했다. 2개월이라는 한시적 조건을 달았다. 그 사이 인수 기업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몇몇 기업이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유럽발 금융위기와 V-리그 승부조작 사건 등이 터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 2개월은 4개월이 됐다가 6개월이 되더니 어느새 1년이 됐다.
▶희망은 포기하는 순간 사라진다
현재 인하대 체육관에서는 8명만 훈련을 하고 있다. 미니 훈련단이다. 신영석과 최홍석은 대표팀에 소집됐다. 일본 도쿄에서 2012년 런던올림픽 세계예선전에 참가 중이다. 세터 송병일은 신혼여행 중이다. 부상으로 신음하는 선수들도 있다. 전술이나 연습 경기는 쉽지 않다. 그저 몸을 만들고 훈련 감각을 익히는데 중점을 둔다.
선수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가장 힘들다. 지난해 여름 KOVO컵과 V-리그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성적을 보여주면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KOVO컵에서 선수들이 뭉쳤다. 준우승을 차지했다. V-리그에서는 시즌 말미까지 4강을 노렸다. 외국인 선수도 없었지만 끈끈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인수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박희상 감독은 "우리캐피탈이 떠난지 1년이 됐다. 선수들도 힘들어한다. 훈련이 쉽지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힘들단다. 박 감독은 "요즘은 선수들에게 따로 말을 하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선수들이 대견하다"고 했다.
KOVO와 각 구단들에게 부탁도 잊지 않았다. 박 감독은 "해체를 하면 각 구단들이 좋은 선수들을 데려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무가 빠지는 마당에 5개 구단으로 가면 안된다. 6개가 돼야 리그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주판알을 튕기는 이기주의는 버려야 한다. 배구판 전체를 생각해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KOVO 관리 체제는 6월초까지다.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희망을 이야기했다. 주포 김정환은 "희망이란 녀석은 포기하는 순간 사라진다고 하더라. 우리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년도 버텼는데 더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선수단 모두 하나가 된 상태다. 좋은 선수들이 많다. 인수 기업이 나타나 제대로 된 외국인 선수만 들어온다면 4강권은 확실하다. 배구단은 홍보효과도 크다. 조금만 생각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드림식스는 최홍석 신영석 박상하 송병일 등 V-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포진해있다. 이들 모두 젊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도 크다.
훈련이 끝난 뒤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선수단은 웃음을 지으며 파이팅을 외쳤다. 씁쓸함이 묻어있으면서도 희망이 엿보이는 웃음이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박 감독은 "인수 기업이 나오고 난 뒤 소주 한잔 하자"고 했다. 새로운 기업의 이름을 가슴팍에 달고 박 감독과 소주 한잔 나눌 상상을 하며 체육관을 나섰다.
등 뒤에서 선수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잘 써주세요. 저희는 희망을 믿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선수들 모두 함께 뛰고 있을 겁니다." 인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