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과 대전의 K-리그 9라운드 경기. '빵. 빵. 뻥' 90분 동안 세 번의 큰 함성 소리가 축구장을 메웠다. 관중들이 웃었고 선수들도 머쩍은듯 웃었다. 심판도 미소를 보였다. 22일 광양축구전용경기장. 치열한 승부가 벌어지는 그라운드에서 펼쳐진 '몸·말 개그'에 관중석에는 웃음꽃이 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①적과의 왈츠=전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지 몇 분 지나지 않았다. 공은 높이 떴다. 대전의 골키퍼 최 현도 공중볼을 잡기 위해 높이 떴다. 그런데 착지 순간 그는 모든 동작을 멈췄다. 공을 잡은 두 손과 그의 가슴 사이에 한 사나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남의 최단신 공격수 심동운(1m70)이었다. 심동운도 공중볼 경합을 위해 점프를 했지만 1m92의 장신인 최 현의 품에 쏙 안기며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는 최 현의 품을 빠져나오려 애를 썼지만 공을 놓치면 안되는 최 현은 두 팔에 더 힘을 줬다. 심동운이 왼쪽으로 움직이면 최 현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다시 오른쪽으로.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서 때아닌 '적과의 왈츠'가 탄생한 순간이다. 5초 가까이 진행된 심동운과 최 현의 왈츠에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빵' 터졌다. 결국 최 현이 그의 품을 빠져나온 심동운의 등을 '찰싹' 때리는 것으로 '폭력사태'로 왈츠가 끝이 났다.
②속일 걸 속여야지=전반 30분. 경기 감독관석 앞쪽에서 전남의 한재웅이 볼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앞에는 김대용 대기심이 자리해 있었다. 한재웅과 대기심 사이의 거리는 1m 남짓. 볼다툼 끝에 공은 한재웅의 발에 맞고 사이드라인을 벗어났다. 그때 한재웅이 크게 소리쳤다. "쟤 맞고 나갔어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그의 외침을 정확히 들은 본부석쪽 관중들은 또 '빵' 터졌다. 모두 알고 있었다. 3층에 자리한 기자도 알고 있었다. 한재웅의 발에 맞고 공이 나갔다는 것을. 1m 거리에서 유심히 장면을 지켜본 김대용 대기심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웃었다. 한재웅도 멋쩍었는지 웃음으로 답했다. 잠시 뒤 다시 대기심 앞에서 플레이를 한 한재웅은 대기심과 서로 눈이 마주쳤다. 또 웃었다. 볼 소유권을 두고 경기 중 자주 발생하는 일이지만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가까운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거짓말이었다. 심판뿐만 아니라 관중도 속일 수 없었다.
③뻥 터져버린 공=이전 두 사건에서 비롯된 큰 함성이 관중석에서 나왔다면 이번에는 그라운드 위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후반 16분. 전남의 이종호가 왼쪽 측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다 대전 수비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공을 밟은 뒤 넘어지면서 몸으로 공을 짓눌렀다. 그 순간 경기장을 메운 '뻥' 소리. 공이 터졌다. 최명용 주심은 공을 들어보더니 이내 경기장 밖으로 굴렸다. 새로운 공이 그라운드 위에 놓였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전남의 한 선수는 "K-리그 경기에서 공이 터진 것을 처음 본다"며 웃었다. 관중들도 터진 공이 신기한 듯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나 웃고 넘길수만은 없는 일.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나도 경기 중 공이 터진 걸 처음 본다"며 "제품사에 공을 맡겨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광양=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