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상주와 대전의 K-리그 7라운드가 열린 상주시민운동장. 경기전 만난 유상철 대전 감독은 6연패 팀의 사령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이미 성적에 대해 초연해진 것일까, 아니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일까.
먼저 허정무 인천 감독의 사퇴 얘기를 묻자 "남 일 같지 않다. 나도 성적이 계속 안 좋으면 못버틸 것 같다"라고 답했다. 표정은 담담했다. 반면 대전의 연패 얘기가 나오자 살짝 미소가 번졌다. 선수들의 눈빛에서 무엇인가를 읽었던 것이다. 그는 "유난히 이번 경기를 앞두고 팀 분위기가 좋다. 선수들에게 굳이 이겨야 한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보다 선수들이 더 잘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주전 비장의 무기로 두 가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주 부산전에 이어 미드필더 정경호를 중앙 수비수로, 조커로 활용하던 김형범을 올시즌 처음으로 선발 출격시켰다. 베테랑들이 공수의 중심에서 팀을 이끌어주길 바랐다.
경기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유 감독은 90분 뒤 표정은 어땟을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선수들과 함께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대전 서포터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상주시민운동장의 원정 라커룸에는 대전 선수들의 함성 소리와 웃음이 넘쳐 흘렀다. 대전이 지긋지긋했던 6연패를 끊은 순간이다. 상주에 2대1 승리를 거뒀다. 경질설까지 흘러 나왔던 유 감독이 기사회생했다. 비장의 카드가 적중했다. 중앙 수비수 정경호가 경기 내내 유 감독과 대화를 주고 받으며 선수단의 중심을 잡아줬다. 세트피스 '스페셜리스트' 김형범은 대전의 2도움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선수들과 한참 승리의 기쁨을 나눈 유감독은 "1승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승리의 기쁨을 즐기고 싶다"며 연패를 끊은 소감을 밝혔다. 이날 유 감독은 선수들의 땀냄새를 제대로 맡았단다. 선제골을 넣은 김창훈과 추가골을 넣은 바바가 골 세리머니로 유 감독의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그는 "약속된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만큼 선수들이 감독 입장을 이해해준 것 같아 크게 위로가 됐다"고 덧붙였다.
비장의 카드 이외에도 유 감독이 밝힌 연패 탈출의 비결은 따로 있었다. 지난 6경기 동안 유 감독과 대전 선수들의 마음을 괴롭게 했던 안 좋은 일들이 대부분 정리됐다. 김광희 대전 사장의 사퇴도 일단락됐고, '강제 은퇴' 비난에 시달렸던 팀의 레전드 최은성도 전북 유니폼을 입고 선수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관중난입 폭력사태로 경기장 출입이 금지됐던 서포터스들도 상주시민운동장을 다시 찾았다.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유 감독은 "어제도 몸은 피곤한데 새벽 5시까지 잠을 못잤다. 그래도 아침에 몸이 전혀 무겁지 않아다. 기분도 좋았다. 선수, 구단, 서포터스 모두 어느정도 정리가 돼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답했다. 선수들도 감독의 마음과 똑같았다. 팀 분위기도 팀 정상화와 함께 상승 곡선을 탔다. 유 감독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안 좋았던 일들은 대전이 좋은 팀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픈 것을 미리 앓았다. 앞으로 탄력을 받아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희망을 노래했다.
경기전 보였던 유 감독의 의미심장한 미소는 성적에 초연해진 것도, 애써 미소를 지어보인 것도 아니었다. 연패 탈출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이 유 감독도 모르게 표정 속에 베어나온 것이었다. 마음조차 얼어붙게 만들었던 기나긴 한파는 가고 4월의 따뜻한 봄 바람이 대전에 날아 들었다.
상주=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