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전남의 일본 전지훈련지인 가고시마. J-리그 팀 우라와 레즈와의 연습경기에서 정해성 감독은 '광양 루니' 이종호(20·전남)를 벤치로 불러 따끔한 충고를 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 말 안해도 내가 무슨 얘기 하려는지 알거야." 이종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부터 계속 들어왔던 얘기라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이종호는 "네, 힘 빼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겨우내 흘려온 땀방울은 4경기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24일 열린 K-리그 4라운드 경남전, 이종호는 1골 1도움의 맹활약으로 전남의 시즌 첫 승을 이끌어냈다. 본인은 물론 전남의 골 갈증까지 해소한 3대1의 완승이었다. 이종호는 '맨 오브 더 매치(경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회가 선정하는 K-리그 4라운드 위클리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렸다.
▶힘을 빼야만 하는 이유
전남의 유스팀 광양제철고를 졸업하고 2011년 전남에 입단한 이종호는 정해성 전남 감독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기대주였다. 정 감독은 "파괴력 있는 돌파와 과감한 슈팅을 해줄 수 있는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심 지동원(21·선덜랜드)과 함께 전남의 공격을 이끌 신예 공격수로 성장해주길 바랐다. 그해 3월 20일, 정규리그 데뷔 2경기 만인 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이종호는 프로 데뷔골에 도움까지 기록하며 전남의 3대0 완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득점포는 침묵했고 허벅지를 다치며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졌다. 2골 3도움으로 지난시즌을 마쳤다. 정 감독이 진단한 부진의 원인은 '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유의 웨인 루니처럼 저돌적인 돌파가 돋보이는 이종호지만 아직은 힘 조절이 미숙하다는게 정 감독의 냉철한 평가다. 정 감독은 "의욕만 앞서 몸에 힘이 들어가 있다. 무조건 돌파만 시도하는게 아니라 수비를 제치는 척하면서 동료들을 이용하는 패스플레이를 해야 한다. 슈팅때도 힘을 빼야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매일 같은 얘기를 듣다보니 이종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단다. 하지만 단점을 극복했을 때 돌아오는 쾌감 때문에 그는 다시 이를 악 물었다. 힘을 빼고 또 뺐다. 경남전 골도 힘을 빼고 가볍게 찬 결과물이었다. 이종호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골이다. 그는 "힘이 점점 빠지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 플레이에 자신이 많이 생겼다.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 힘 빼고 경기를 뛰겠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방법은 요가와 단전호흡
정 감독은 이종호에게 또 다른 미션을 내릴 예정이다. 유연성 향상 프로젝트다. 정 감독은 "경남전이 끝나고 코칭스태프들과 상의했는데 종호는 요가와 단전호흡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종호에게 얘기를 해봐야 겠다"며 웃었다. 유연성 향상은 부상 방지에 효과가 있다. 순간적인 방향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단전호흡은 힘을 빼기 위한 조치다. 복식호흡을 익혀 슈팅시 적절하게 호흡을 관리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이종호는 당황스러운 듯 했다. "음…. 우리팀 막내 선수들이 요가를 하고 있기는 한데, 나도 해야 하나? 그래도 코어 트레이닝(골반 근육강화훈련)을 매일 하고 있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복식호흡도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한다.
▶이벤트 공약, 5호골에는?
지난 1월 광양에서 만난 이종호는 한 가지 공약(?)을 내세웠다. 경기장을 찾은 서포터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것. 지난해 관중과 함께 하는 골세리머니를 하다 경고를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세리머니를 제외한 이벤트를 고민했다. 그 결과가 27일 공개됐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2시즌 첫 골을 성공시켜 기분이 좋습니다. 이 기쁨을 고향 팬과 함께 하기 위해 통닭 30마리를 쏘겠습니다. 4월 7일 홈경기때 오셔서 마음껏 드시고 저에게 힘을 주세요'라고 글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7일 상대는 수원이다. 종종 타 팀 팬들이 수원의 마스코트 아길레온(새)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비유가 바로 '닭'인데 '통닭'을 사기로 한 이종호의 약속이 마치 수원에 도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에게 '의도'를 물었더니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다"라며 극구 부인했다. 그는 "팬들이 있어 뛸 수 있다. 전남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다. 하지만 매 골마다 이벤트를 하면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다.(웃음) 5호골을 넣었을 때 다시 이벤트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감독의 말대로, 이종호의 공언대로 '힘'뺀 플레이가 농익는다면 전남 팬들이 통닭 파티를 또 벌일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