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는 한 해 예산이 1000억원에 달하는, 스포츠 종목 중 가장 큰 단체다. 축구협회장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수장인 대한체육회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영예로운 자리다. 또 축구협회는 산하 연맹이나 다른 종목 단체 직원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기도 하다. 그만큼 직원들의 처우가 좋고, 위상이 높고, 기대치가 남다른 조직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축구는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국민 스포츠, 국기이다.
그런데 한국축구를 이끌어가는 축구협회가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런저런 비상식적인 일이 이어지는 데도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터질 때마다 축구협회 수뇌부는 말없이 사태가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이다. 지나가는 비를 잠시 피하겠다는 듯 숨을 죽이고 있다.
절도와 횡령을 저지른 직원을 비호한 것으로 알려진 김진국 전무가 물러났지만, 이 과정에서 흘러나온 비리 등에 관해 뭐 하나 밝혀진 게 없다. 책임질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 김 전무의 사퇴의 변이 전부다. 김 전무의 사퇴를 앞세워 또 다시 축구협회가 일을 덮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축구협회에 망신살이 뻗쳤다. 상급 단체인 대한체육회가 특정감사에 나선다. 종목 단체에 심각한 비리가 발생하거나, 단체장 혹은 이사들간의 분쟁이 있을 때나 하는 게 체육회 특정감사다. 일개 직원이 일으킨 문제 때문에 체육회가 직접 나서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축구협회가 졸지에 문제 단체로 전락한 것이다. 아시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한국축구를 응원해 온 국민들에게 , 축구협회가 어떻게 비쳐질까 두렵다.
지난해 조광래 A대표팀 감독 경질부터 시작해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축구인들은 한 목소리로 "부끄럽다"고 한다. 아울러 "터질 것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도 조중연 회장(66)을 비롯한 축구협회 수뇌부는 묵묵부답이다.
비리 의혹이 나오고, 무능한 축구협회를 살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자정 능력이 없고,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변화를 줘야 한다. 리더십에 문제가 있으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 2009년 조 회장 체제가 들어선 후 한국축구의 외교력은 급전직하했다. 축구협회 수뇌부 중 누구도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국익을 대변해줄 능력이 없다.
조 회장과 이회택(66) 김재한(65) 노흥섭(65) 최태열 부회장(67) 등으로 이뤄진 축구협회 수뇌부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거취에 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축구인은 물론, 국민들에게 이들 60대 축구인들은 고질불통 수구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다.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소통하고 고민하는 집단이 아니라, 20년 가깝게 지켜온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조 회장 등 축구협회 수뇌부는 축구 원로로 물러나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축구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