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극 '해를 품은 달'이 첫 방송부터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송가를 뒤흔들고 있다. '궁중 판타지 로맨스'라는 색다른 소재, '성균관 스캔들' 원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쓴 정은궐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등이 폭발적 관심의 이유가 됐다. 이는 또한 최근에 '명품사극'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시청자들의 눈을 '길들여온' 결과이기도 하다. 전작들에 대한 만족감이 신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타난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뿌리 깊은 나무'로, 다시 '해를 품은 달'로 이어지는 최신 사극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해를 품은 달'의 인기몰이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상상력으로 재미 극대화
최근의 사극은 역사적 사실과 실존인물에 대한 재현보다는 현대적 감각에 맞는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에 더 힘을 준다. '팩션'을 넘어서 아예 '픽션'에 가까울 정도다.
'공주의 남자'는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원수지간인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2세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야사에 남겨진 짧은 기록을 바탕으로 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허구다. 심지어 야사가 사실인지 아닌지도 극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뿌리 깊은 나무' 또한 실존인물과 소재가 등장하지만 사극의 전형성에서 탈피해, 욕설을 하는 세종이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해를 품은 달'은 더하다. 시대적 배경만 조선일 뿐 남녀 주인공 모두 가상의 인물인 데다, 사극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해를 품은 달'의 전작으로 여겨지는 '성균관 스캔들'도 남장여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극이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하게 됐고, 그만큼 차별화된 재미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배경, 친숙함 획득
'주몽' '선덕여왕' 등 한때는 조선시대 바깥으로 눈을 돌린 사극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또다시 시대적 배경을 조선으로 설정한 작품들이 늘고 있다. 이는 정통 사극보다는 '퓨전'과 '팩션'을 내세운 사극에서 더 두드러진다. '성균관 스캔들' '공주의 남자' '뿌리깊은 나무' 모두 조선시대가 배경이다. '무사 백동수'도 실록에 기록된 조선제일검 백동수를 통해 조선시대 민중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시청자들에게 시대적 배경이 친숙하다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를 이해시키기 위해 배경지식으로 설명하거나 묘사해야 할 것들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또한 상상력으로 만든 이야기가 역사 속에 발붙이고 설득력을 갖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해를 품은 달' 또한 판타지를 내세웠지만 시청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반면에 '광개토태왕' '계백' 등 대작 사극들은 시대적 배경을 달리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하고, 스케일과 장중함을 강점으로 내세운 경우다.
▶20부작 짧은 호흡, 젊은 시청층 공략
과거에는 '사극'이라고 하면 50부작 이상의 대하 사극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사극은 트렌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호흡이 짧다. 보통 20부작을 기준으로 삼는다. '성균관 스캔들'은 20부작이었고, '공주의 남자'와 '뿌리 깊은 나무'는 24부작이었다. '무사 백동수'는 24부작으로 기획됐다가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아 6회를 연장해 30부작으로 막을 내린 경우다.
이야기와 소재가 자유로워진 만큼 젊은 시청층을 공략해 그들의 호흡에 맞는 길이를 택한 것이다. 또한 TV 시청의 습관성이 낮은 젊은 시청층까지 포괄함으로써 드라마의 반향을 키우는 효과도 얻을 수 있게 됐다. 두 권짜리 원작소설을 20부작으로 만든 '해를 품은 달'도 젊은 시청자들을 위한 맞춤형 사극인 셈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