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스타 오상은(35) 해고 사태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5일 KGC인삼공사가 서상길 총감독, 이상준 코치, 오상은 플레잉코치 겸 선수에게 한꺼번에 해고를 통보한 사실이 알려졌다. 탁구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12월 초 MBC 탁구최강전에서의 부진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단순한 부진이 아니다.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 오상은이 임대로 뛰고 있는 폴란드리그 일정과 갑자기 잡힌 탁구최강전 일정이 겹치면서 스케줄이 꼬였다. 폴란드와의 계약이 뒤틀리면서 오상은은 평정심을 잃었다. 강동훈(국군체육부대)과의 경기에서 한 세트를 0-11로 내주는 등 0대3으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에이스 오상은의 부진으로 인해 명가 인삼공사는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일주일 후 남녀탁구종합선수권이 열렸다. 팀의 최고참 오상은은 최강전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듯 혼신의 힘을 다했다. 현장에서 만난 서상길 감독은 "상은이를 많이 혼냈다. 태어나서 그렇게 혼나보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대회에서 '맏형' 오상은과 '막내' 김민석은 최강의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며 4관왕에 올랐다. 오상은은 단식 우승을 거머쥐며 남자선수 최초로 6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오상은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직전 경기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이 악물고 뛰었다"고 말했다. 오상은의 겸허한 반성과 최다우승 트로피로 사태는 훈훈하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뒤늦은 해고 사실이 알려진 직후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중인 인삼공사 선수단의 분위기는 최악이다. 하루아침에 감독, 코치를 잃은 선수들은 구단의 처사에 반발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몰아친 때아닌 칼바람에 탁구인들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선수의 잘못은 징계받아 마땅하지만, 해고 조치는 가혹했다는 게 탁구계의 여론이다.
첫째, 해고 시기에 대한 지적이다. 애초부터 징계를 결심했다면 문제가 불거진 최강전 직후에 했어야 한다. 해고까지 할 만큼 문제가 된 선수라면 종합선수권에 출전시키지 말았어야 한다. 결국 써먹을 만큼 써먹고 버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종합선수권을 '선처의 기회'로 생각했을 것이다. 속죄의 마음으로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오상은은 대한민국 남자탁구 대표팀의 맏형이다. 런던올림픽의 해가 밝기 무섭게 10년을 몸바쳐 뛴 소속팀으로부터 해고를 통보받았다. 당장 훈련할 장소도 없는 처지다. 오상은은 종합선수권 우승 후 "(주)세혁이도, 나도 컨디션이 좋다. 베이징올림픽 때 동메달을 땄는데 메달색을 바꿀 수 있을 것같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마음을 다잡고 오직 경기력 향상에만 집중해야 할 시기에 믿었던 소속팀이 칼날을 겨눴다. 구단 지원없이 국제탁구연맹(ITTF)이 주관하는 프로투어 대회에 나서기 어렵고, 당연히 랭킹포인트도 획득할 수 없다. 올림픽 대표선수의 랭킹 하락은 시드 배정과 직결된다. 최강 중국을 피해 2번 시드를 노리고 있는 한국 남자대표팀에게 큰 악재로 작용하게 됐다.
둘째 해고의 방법이다. 선수와 감독의 소명 절차를 거치는 징계위원회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재계약 불가 통보' 서류 한장으로 이별을 선고받았다. 2003년 인삼공사에 입단한 오상은은 2001년 세계선수권 은메달(혼합복식)부터 지난해 월드팀컵 준우승에 이르기까지 세계무대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온 한국탁구의 간판이다. 서상길 감독 역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포함, 3번의 올림픽에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나섰다. 30년 이상 한국 탁구계를 위해 봉직한 노감독이나 구단의 대표 얼굴로 10년 가까이 뛴 선수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가 아니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수들과 동고동락해온 이상준 코치 해고에 대한 반발도 크다. 선수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잘못은 명백하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오상은 역시 "욱하는 성격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 잘못을 반성했고 징계를 각오했다"고 했다. 하지만 "한마디 설명도 없고, 단장님도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주지 않았다. 답답하다"며 서운한 마음을 털어놨다. 인삼공사 선수들은 비정규 연봉계약직이다.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형식이다. 재계약하지 않으면 자동 해고다. 하지만 선수가 1년만 뛰고 이적을 원할 경우엔 선택권이 없다. 구단의 이적동의서가 필요하다. 구단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떠날 수 없다. 선수에게 절대 불리한 조건이다.
한 원로 탁구인은 "30년 넘게 이 바닥에 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선수와 감독을 자르는 것은 처음 봤다"며 한숨을 쉬었다. "페어플레이하지 않았다면 분명 잘못이다. 그런데 한번의 실수가 과연 10년 넘게 팀을 위해 일한 감독, 코치, 선수를 한꺼번에 날릴 만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A감독은 "탁구는 당일 기분과 컨디션이 큰 영향을 미치는 예민한 종목이다. 인사권은 구단 고유권한이지만 상식 밖의 처사다. 이런 식으로 한마디 대화없이 감독과 선수를 자른다면 어느 감독, 어느 선수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며 개탄했다. 또다른 선수 출신의 한 탁구인은 "오상은 선수의 정상을 참작해 감독과 구단이 충분히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였다고 본다. 일방적인 결정이 아쉽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